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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란 "학교 체육 수업 확대… 위기의 K스포츠 살릴 첫걸음"

입력
2023.12.08 04:00
수정
2023.12.08 08:49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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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5개월' 장미란 문체부 차관 단독 인터뷰
"한국일보 'K스포츠 추락' 정독, 한일 격차 실감"
"체육 늘 뒷전… 입시 반영 없이는 변화 어려워"
"아이들, 스포츠 통해 성취보다 실패 경험해야"
"학생 선수들 진로 환승, 정부·체육계가 도울 것"
내년 총선 차출설 묻자 "현재 맡은 업무에 집중"

편집자주

한국 스포츠, 어떻게 기억하나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도약한 우리 스포츠는 국민들에게 힘과 위로를 줬습니다. 하지만 저력의 K스포츠가 위기에 섰습니다. 프로 리그가 있는 종목조차 선수가 없어 존망을 걱정합니다. 반면, 라이벌 일본은 호성적을 거두며 멀찍이 달아났습니다. 희비가 엇갈린 양국 스포츠 현실을 취재해 재도약의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6일 정부세종청사 집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세종=김예원 인턴기자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6일 정부세종청사 집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세종=김예원 인턴기자


일본 스포츠의 유소년 저변과 시설이 우리와 격차가 난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 몰랐어요. (일본이 최근 거둔 국제대회 호성적이) 이런 토대에서 가능했구나 싶었죠.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6일 정부세종청사 집무실에서 가진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본보의 'K스포츠의 추락, J스포츠의 비상' 시리즈를 꼼꼼히 읽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장 차관이 정독했다는 기사 출력물에는 형광펜이 군데군데 쳐졌고, 손때가 묻어 있었다. 체육인이었던 그는 지난 7월 체육·관광 정책과 국민 소통 업무를 총괄하는 문체부 2차관직을 역대 최연소로 맡았다. 그는 취임 후 끊임없이 듣고, 질문하고, 읽으며 공부했다고 한다. 자신이 전문성을 갖춘 체육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장 차관은 "(시리즈에서 지적했듯) 한국 스포츠가 전례 없는 위기 앞에 섰다는 의견에 동의한다"면서 "경험자로서 볼 때 스포츠는 어려서 익히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엘리트 스포츠, 2012년 런던 올림픽 이후 내리막"

한국 스포츠계를 바라보는 장 차관의 마음은 혼란스럽고 절박했다. 뿌리(유소년 체육)와 기둥(성인 엘리트 체육)이 동시에 흔들려 자칫 고사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장 차관은 "국가대표급의 엘리트 스포츠는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는데, 내년 파리 올림픽 본선에 오른 구기 종목이 남자 축구와 여자 핸드볼뿐이라 위기의식이 더욱 크다"고 평가했다. 장 차관의 지적처럼 이미 수년 전부터 학교 운동부가 빠르게 줄어드는 등 체육계 밑단에선 붕괴 신호를 끊임없이 보냈다. 그 영향이 이제는 국민들 모두가 지켜보는 대표팀 경기력에도 미치게 됐다는 게 장 차관의 분석이다.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6일 정부세종청사 집무실에서 한국일보 인터뷰하며 체육 정책의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세종=김예원 인턴기자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6일 정부세종청사 집무실에서 한국일보 인터뷰하며 체육 정책의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세종=김예원 인턴기자

결국 학교 스포츠의 부활 없이는 '팀 코리아'(국가대표)의 재도약도 불가능하다. 장 차관은 변화를 위한 첫 단추로 더 많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 운동을 접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장 차관은 "모두가 '체육 활동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선택의 순간이 오면 후순위로 밀린다"면서 "대학 입시 때문에 부모들은 자녀에게 운동을 안 시키고, 일부 종목은 비용이 많이 들어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재능이 있어도 포기하기도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체육 활동이 어떤 식으로든 입시에 반영되지 않으면 변화하기 어렵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입 개편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장 차관은 "체육계로선 중요한 이슈인 만큼 관련 부처와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미국 등 선진국처럼 대입에 스포츠 참여 기록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문화도 자리잡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장 차관은 학교 체육에 새 숨을 불어넣는 작은 노력부터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학교 운동부 창단 지원과 운영금 지원 사업을 예로 들었다. 문체부와 대한체육회는 내년 상반기까지 22곳의 학교에 창단 지원했다. 또, 학교 운동부 254곳에는 운영비를 보태줬다. 이렇게 되면 용품 구입 등에 허덕이는 운동부로선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장 차관은 특히 "형편이 어려워 운동을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의 수요를 조사해 지원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장 차관은 "평범한 학생들이 스포츠를 교과 수업 중 충분히 접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운동을 일단 해봐야 스스로 소질이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의 부카츠(部活·부활동)처럼 방과후 체육 활동도 활성화해야 하지만, 우선 체육 수업 자체를 더 늘리고 내실 있게 진행하려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는 게 장 차관의 생각이다. 예컨대 기존 구기 종목의 룰을 단순화한 새 종목을 만들어 아이들이 손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는 교육부와 협의해 추진할 과제다.

운동선수의 길을 걷다 중도 이탈한 학생 등이 쉽게 진로를 갈아타도록 구체적으로 지원하는 방안도 세웠다. 현재 학생 선수 10명 중 9명은 프로 진출 등 성인 무대에 서보지도 못하며, 데뷔해도 수명이 짧은 편이다. 진로가 불투명하다 보니, 운동에 소질 있는 아이들이 선뜻 운동부에 발을 들이지 못하고 있다. 장 차관은 "학생 선수 등이 미리 자신의 진로를 고민해보고 정부와 대한체육회가 실현을 돕는 '자기설계형 경력개발지원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내년 12월 완공할 체육인 교육센터가 중심이 돼 선수들이 생각하는 '플랜B'(선수 은퇴 시 차선의 진로)를 토대로 상담해주고 교사, 지도자, 체육 행정가 등이 다양한 방식으로 구체적 진로를 개발해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이 사업은 내년 정책 연구부터 시작한다.

"엘리트 체육 외면하면 손흥민, 김연아가 줬던 기쁨과 감동 누가 채우나"

장 차관은 평소 "우리도 미국, 일본처럼 다른 직업을 가진 '투잡러' 운동선수가 나와야 한다"고 얘기하곤 했지만, 최고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한 분야를 판 엘리트 선수들의 노력이 외면받는 분위기는 경계했다. 그는 "'국가대표급이라도 엘리트 스포츠에 왜 집중투자를 해야 하느냐'는 이야기가 현장을 위축시킨다"면서 "엘리트 스포츠가 고사하면 손흥민, 이강인, 김연아, 박태환 같은 선수가 국민들에게 줬던 기쁨과 희망, 애국심 등의 가치는 누가 대신 채워줄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문체부는 내년에 국가대표 지도자 수당을 5년 만에 인상하고, 국외전지훈련비를 올해 대비 약 20% 증액하기로 했다.

장 차관은 특히 "체육인복지재단 설립은 차관으로서 꼭 해내고 싶은 1순위 체육 정책"이라며 의지를 드러냈다. 체육인복지재단은 은퇴 선수의 진로지원이나 공제사업 등을 하는 기관인데 현재 이를 만드는 법이 발의돼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그는 스포츠의 본질적 가치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장 차관은 "선수를 지망하지 않더라도 모든 아이들이 운동을 해봐야 한다"며 "성취보다 좌절과 실패의 경험을 맛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기에서 패해 잠시 낙심하더라도 다시 털고 일어나 도전하는 힘은 스포츠를 통해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7일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대회 현장 점검을 위해 평창군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7일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대회 현장 점검을 위해 평창군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장 차관은 취임 후 5개월을 두고 "업무를 파악하고 첨예한 현안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준비를 끝낸 기간"이라고 평가했다. 역도 용상 종목에 비유하자면, 지금까지는 '클린'(바벨을 쇄골까지 끌어올려 얹는 동작)을 한 것이지만 앞으로는 본격적으로 힘을 쥐어짜내 '저크'(바벨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는 동작)를 할 차례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내년 4월 총선에 국민의힘 후보로 차출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정치권에서 계속 나온다. 장 차관은 이에 대해 "(정치권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게 없다. 현재 맡은 업무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 유대근 기자
세종= 박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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