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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유무에 관계 없이 모두가 발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입력
2023.12.0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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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한 토크 #69]
창업에 도전한 전문직 소상공인

편집자주

600만 소상공인 시대, 소상공인의 삶과 창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발은 몸의 주춧돌이다. 우리 몸의 무게를 지탱하고, 걷고 뛰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그래서 신발은 우리 활동에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기성화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순 없다. 발의 모양이 남들과 다른 사람도 많고, 하반신에 장애를 가진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함길수제화&의지보조기'는 이런 불편함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맞춤 신발과 의지보조기를 제작하는 회사다. 의지보조기사인 김종열 대표는 본인의 전문 분야로 창업해 100년 기업을 꿈꾸는 소상공인이다.

김종열 대표. 함길수제화&의지보조기 제공

김종열 대표. 함길수제화&의지보조기 제공

회사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함길수제화&의지보조기 김종열입니다. '함길'은 '함께 걷는 길'이란 뜻이고, '의지'란 신체 일부를 절단한 사람이 사용하는 보장구를 일컫는 말입니다. 즉 '모두가 함께 걷기 위해 손으로 한 켤레씩 신발을 만들고, 장애를 가진 분이 사용하실 수 있는 보조 장치를 만드는 회사'임을 직관적으로 사명에 녹였습니다. 우리 주 생산품은 장애인 수제화인 맞춤형 교정용 신발과 인솔, 그리고 발목관절 보조기입니다."

맞춤형 교정용 신발을 제작하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의사 처방전을 바탕으로 고객과 상담합니다. 이때 직업과 활동성, 나이, 그리고 불편한 신체 부위를 여쭙습니다. 이때 신발의 기능과 한계를 정확히 설명한 뒤 신발 디자인을 선택합니다. 우리 회사의 자랑거리는 관절가동범위와 근력, 발의 변형 정도, 걸음걸이 등을 파악해 세부 디자인과 재료 등을 정하는 이학적 검사 기술입니다. 예를 들어 왼손이 불편한 사람은 오른손이 '우세손'이 되므로 왼발은 안쪽, 오른발은 바깥쪽에 지퍼를 다는 식입니다. 그다음엔 양말과 보조기를 모두 착용해 석고본을 뜨고, 이를 토대로 신발골을 제작합니다. 가죽 재단과 재봉 과정을 거치면 신발이 나오는데, 피팅을 통해 최종 수정한 뒤 신발을 완성합니다."

직접 제작한 신발. 함길수제화&의지보조기 제공

직접 제작한 신발. 함길수제화&의지보조기 제공

의지보조기 분야는 어떻게 뛰어들게 됐나요?

"기계공학을 전공한 뒤 공작기계회사의 개발실에서 근무했습니다. 2005년 경 우연히 의지보조기 관련 직업에 대한 정보를 라디오에서 듣게 돼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다시 학업을 시작했어요. 직업을 바꾸고 싶은 마음도 컸고, 의지보조기사란 직업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의지보조기사는 어떤 직업인가요?

"한국직업사전에 이렇게 나와있네요. '지체 장애인들의 상실, 약화된 신체기능을 대체, 보완하거나 장애를 보호하는데 필요한 의지보조기를 제작, 수리 및 판매하고 착용을 지도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아주 정확해서 덧붙일 말이 별로 없습니다.(웃음) 물리치료사나 방사선사처럼 필수 과목을 이수한 뒤 보건복지부에서 주관하는 자격시험에 합격한 후에 의지보조기사란 직업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사업체를 꾸리기까지 어떤 경력을 쌓으셨나요?

"바이오메카닉스라는 회사를 10년 정도 다녔어요. 여러 대학병원의 족부클리닉에서 의사가 어떻게 환자를 감사하고 처방하는지 오랜 기간 지켜봤죠.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처방전 한 줄 한 줄의 의미를 조금은 파악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또 제 모교인 순천제일대학교에서 시간강사, 겸임교수로 5년 간 일하며 창업을 꿈꿨습니다. 다녔던 회사 대표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김종열 대표. 함길수제화&의지보조기 제공

김종열 대표. 함길수제화&의지보조기 제공

창업 전과 후, 어떤 점이 크게 다른가요?

"직장인일 땐 정해진 시간과 틀에 제 삶을 맞췄다면, 창업 후엔 좀 더 시간적 여유가 생겼달까요. 고객에 따라 신발 제작 난이도가 판이하거든요. 발 절단자나 소아마비를 앓는 고객의 신발은 만들기가 다소 까다롭습니다. 이럴 땐 길게 고민하고 연구하며 신발을 만들 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여전히 공부할 게 많거든요.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느낄 땐 아마존이나 이베이에서 해외 서적을 찾아 사 보고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습니다.

"창업 초기였어요. 요족을 앓고 다리 길이도 차이가 있는 할머님이 아드님과 같이 매장을 방문했어요. 상담해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이 바로 드러나잖아요. 무척 까다로운 분 이더라고요. 하지만 창업 초기에 어떻게 고객을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웃음) 일단 신발을 만들어 드렸는데, 제작 후에도 여러 번 전화해 항의를 하셨어요. 신발은 두 달에 한 번씩 피팅을 다시 해 발에 맞게 매만지는데, 효과가 없다며 보름에 한번씩 찾아와 피팅을 요구하기도 하셨어요. 심지어 아드님이 제 편을 들어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연락과 방문이 뜸하시더니, 어느 날 전화도 없이 밝은 표정으로 매장에 방문해 주셨어요. 제 아들, 딸에게 용돈까지 쥐어주시며 '제 덕분에 무척 편해졌다'고 말씀해 주신 게 기억에 남습니다. 양다리 길이가 7cm 차이 났던 고객도 기억나네요. 몸이 불편하면 활동 반경이 줄어들기 마련인데, 지방에서 큰 사업체를 운영하시다 보니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었죠. 그만큼 제작 후 재피팅도 여러 번 진행했는데요. '죽을 때까지 제게 신발을 맡기겠다'며 기뻐하던 모습도 기억납니다. 저도 '나중에 제 아들에게 이 일을 물려줄 것'이라고 화답했고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백년이 넘어도 경영이 가능한 기업, 고객과 함께 하는 기업, 발과 걸음걸이가 불편한 사람에게 해결책을 드릴 수 있는 실력과 전문성을 갖춘 기업이 되고자 합니다."

장은진 창업 컨설턴트 ari.maroon.c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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