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사건 브로커' 성모(61)씨와 가상화폐 투자 사기꾼 탁모(44)씨. 둘은 한때(2020년 8월 20일~2021년 8월 25일) 한몸이나 다름없었다. 탁씨가 자신을 향해 옥죄어 오는 경찰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경찰 인맥이 짱짱했던 성씨와 '화학적 결합'을 이룬 것이다. 촉매는 탁씨가 사기를 쳐서 챙긴 범죄수익금이었다. 탁씨는 성씨에게 로비 자금 명목 등으로 현금과 벤츠 승용차 등 18억여 원 상당의 금품을 건넸다. 그러나 돈으로 쌓은 둘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해 9월 탁씨가 성씨에게 거액을 줬는데도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자 불만을 품고 성씨의 브로커 행각을 검찰에 찌르면서 둘 사이는 갈라졌다. 합체의 균열은 파국을 몰고 왔다. 성씨는 올해 8월, 탁씨는 10월 검찰에 각각 구속 기소됐다. 그렇게 영어의 몸이 돼 5일 법정에 선 둘은 적으로 변해 있었다.
탁씨는 이날 오후 광주지법 형사8단독 김용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성씨의 변호사법 위반 사건 재판에 친동생과 함께 검찰 측 증인으로 나섰다. 탁씨 형제는 "2020년 12월 9일과 22일, 27일 세 차례 걸쳐 성씨에게 수사 무마 청탁 명목으로 모두 11억 원을 전달했다"며 성씨의 혐의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증언을 법정에서 내놨다.
탁씨는 12월 9일 광주광역시 서구 염주동의 한 식당에서 성씨를 만난 뒤 1억 원을 전달한 혐의와 관련해 "당시 성씨가 식당에서 검찰 고위 간부와 모 지방경찰청장(당시 경무관), 전남 지역 국회의원의 비서관, 6급 검찰 수사관(구속)과 저녁 식사를 하는데 소개해 줄 테니, 인사비로 1억 원을 가져오라고 했다"며 "코인을 환전해 마련한 돈 1억 원을 동생을 통해 식당 근처에 주차돼 있던 성씨의 승용차 트렁크에 실어줬다"고 밝혔다. 탁씨는 "1억 원은 서울 강남경찰서와 광주 광산경찰서에서 수사 중인 코인 사기 사건 해결을 위한 인사비 명목이었다"고 했다.
12월 9일과 27일 각각 5억 원씩을 전달한 혐의에 대해선 "성씨가 경찰이 수사 중인 사기 사건을 알아서 처리해 줄 테니 (돈을)찔끔찔끔 주지 말고 한 번에 몫돈으로 10억~15억 원을 달라고 했다"고 폭로했다. 탁씨 형제는 "여행용 가방(캐리어)에 5억 원씩 담은 뒤 골프연습장 주차장에서 성씨 차량 트렁크에 실어주거나 초밥집에서 건넸다"며 돈거래 전후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탁씨는 또 "성씨가 전남 담양의 한 창호업체에 관공서(공사 수주) 일이 많으니 동생을 거기에 앉히자면서 자치단체 공사 비위에도 연루시키려는 발언도 했다"고 전했다. 탁씨 형제는 대체로 자신들에 대한 검찰의 공소 사실에 부합하는 증언을 내놓으며 성씨를 공격했다. 이날 성씨와 함께 구속 기소된 전모(63)씨도 탁씨 형제와 같은 취지의 증언을 했다.
반면 성씨 변호인은 성씨의 형량을 줄이는 재판 전략으로 맞섰다. 돈 전달 당시 상황 등에 대해 기억에 의존하는 탁씨 형제 증언의 빈틈을 노렸다. 성씨의 금품 수수 규모를 줄여 형량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로 풀이됐다. 실제 변호인은 탁씨의 동생과 전씨가 돈 전달 과정에서 '배달 사고'를 낸 게 아니냐는 취지의 반대 신문을 이어가자 탁씨 동생은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탁씨 동생은 '법원 앞에서 2021년 4월 1억8,500만 원을 성씨로부터 받아간 적 있냐'는 변호인 반대 신문에 "안 받았다"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탁씨 형제는 특히 "성씨를 믿지 못해 돈을 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두는 등 증거를 남겼다"며 "그 휴대폰이 고장 났지만 디지털 포렌식으로 돈 전달 당시 촬영한 사진을 복원해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부장판사는 다음 달 11일 오후 속행 공판을 열어 증거 서류 조사를 한 뒤 재판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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