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첫 심야 자율주행버스 타봤더니]
합정역~동대문역 9.8㎞, 평일 시범운행
"신기해" 호평, "좌석 늘려달라" 요구도
"출발합니다."
4일 오후 11시 30분 서울지하철 2호선 합정역 인근 버스정류장. 승객 21명을 실은 심야버스가 힘차게 시동을 걸었다. 심야버스는 술 한잔 걸치고 늦은 귀가를 하는 시민들이 많아 조심스럽게 운행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버스 어딘가 이상하다. 기사가 운전대에서 손을 놓고 있어도 저절로 움직였다. 빨간색 신호등이 나오면 알아서 멈추고, 좌회전 신호에도 부드럽게 코너링을 했다.
서울시가 세계에서 첫선을 보인 심야 자율주행버스 '심야 A21'이다.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기술을 대중교통에 접목해 시민들의 늦은 귀갓길을 책임지겠다는 취지다. 처음 보는 신(新)기술에 승객들도 감탄과 환호를 보냈다.
돌발상황 닥치면 수동 운전... "안전 우려 없다"
서울시는 이날부터 심야 자율주행버스 운행을 시작했다. 대학가와 쇼핑몰이 몰려 있어 늦은 밤에 유동인구가 많은 합정역~동대문역 9.8㎞ 구간이 대상이다. 주말을 제외한 평일 오후 11시 30분부터 이튿날 오전 5시 10분까지 운행한다. 포털에 심야 A21을 검색하면 실시간 위치와 도착시간을 확인해 누구나 탑승할 수 있고, 유료로 전환되는 내년 상반기까지 요금도 무료다.
기자도 자율주행버스를 타 봤다. 총평은 "안전 우려는 없다"이다. 우선 승차감이 일반버스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안전 운행을 가능하게 하는 각종 첨단기술 덕이다. 운행 구간에 59개의 신호 제어기가 설치돼 버스와 통신하고 신호등 색상이나 신호 변경까지 남은 시간 등 실시간 정보를 전달했다. 또 버스 전면에 열화상 카메라가 있어 인명 사고 방지에 도움을 줬다. 유진수 서울대 기계공학부 연구원은 "9개의 라이다(RIDAR) 센서가 사람과 사물을 구분해 인지하고, 코너에서도 곡률을 고려해 감속할 수 있게끔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자율주행기술이 아직 성숙하지 않은 점을 염두에 둔 장치 역시 여럿 구비했다.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수동모드로 전환해 기사가 직접 운전한다. 오퍼레이터도 항시 탑승해 모니터로 교통 상황 등의 정보를 분석해 혹시 모를 돌발 변수에 대비한다. 안전벨트 필수 착용, 입석 금지 원칙도 적용된다.
"시속 50㎞ 느린 운행은 아쉬워"
시민들은 대체로 합격점을 매겼다. 대학생 김예린(23)씨는 "교통 분야에 관심이 있고 재미있을 것 같아 탔는데, 일반버스로 느껴질 만큼 안락한 승차감이었다"고 호평했다. 신기한 듯 버스 내부를 둘러보거나 기념사진을 찍는 승객도 많았다. 서대문구 아현동에서 온 박이순(67)씨는 "안전하고 심야버스 노선도 하나 늘어 좋다"고 말했다.
물론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승객들이 꼽는 최대 숙제는 느린 속도. 평균 주행 속도는 시간당 40㎞, 최대 속도도 50㎞를 넘지 않아 빠른 이동을 원하는 시민들을 만족시키기엔 다소 부족했다. 정차할 때 빠르게 속도를 줄이는 것도 보완이 필요해 보였다. 신창현(63)씨는 "좌석(23석)이 적어 많은 손님을 태우기 어렵고 안전벨트도 불편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시범운행 결과를 토대로 노선 확대를 검토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청량리역까지 운행구간을 연장하고, 장거리 노선을 정규화해 자율주행버스 정착에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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