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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만 바꿔가며 '빈 차 뺑뺑이'… 파리 날리는 시티투어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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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만 바꿔가며 '빈 차 뺑뺑이'… 파리 날리는 시티투어버스

입력
2023.12.08 04:3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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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티투어버스 1회 평균 승객 4명
82개 지자체 302개 노선, 천편일률적
단순 이동 수단… 관광상품 가치 없어
"지역색 담은 체험 콘텐츠 개발해야"

지난달 30일 울산시티투어버스가 승객 한 명 없는 빈 차 상태로 태화강 국가정원 일대를 순환하고 있다. 울산=박은경 기자

지난달 30일 울산시티투어버스가 승객 한 명 없는 빈 차 상태로 태화강 국가정원 일대를 순환하고 있다. 울산=박은경 기자

“하루 종일 빈차로 도는 날도 많죠.”

지난달 30일 오후,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을 순환하는 시티투어버스 내부는 텅텅 비어 있었다.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안내방송만 아니면 ‘지금 운행 중인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한산했다. 삼호대숲 철새홍보관에서 출발해 같은 정류장으로 되돌아오기까지 1시간 40분 동안 타고 내린 관광객은 2명이 전부였다. 8년째 울산시티투어버스 기사로 일하고 있는 A씨는 “평일은 빈 차로 운행하는 날이 적지 않다”고 털어놨다.

전국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관광객 유치를 위해 앞다퉈 도입한 시티투어버스가 수년째 헛바퀴만 돌리고 있다. 콘텐츠는 그대로 두고 외관 디자인에만 치중하는가 하면 슬그머니 운영을 중단한 곳도 적잖다.

옛 노면전차를 본뜬 울산시티투어버스가 지난달 30일 빈 정류장을 지나가고 있다. 울산=박은경 기자

옛 노면전차를 본뜬 울산시티투어버스가 지난달 30일 빈 정류장을 지나가고 있다. 울산=박은경 기자

7일 울산시에 따르면, 2001년 울산시티투어버스 운행 이래 연간 탑승객이 2만 명을 넘은 해는 2010ㆍ2016ㆍ2017ㆍ2019ㆍ2022년 등 다섯 번뿐이다. 지난해까지 버스 4대가 주 6일 정해진 코스를 번갈아 하루 9회 운행한 점을 감안해 단순 계산하면 버스 1대당 1회 운행 시 4명도 못 태운 셈이다. 10명 이상이 예약해야 출발하는 테마형의 경우 일주일에 한 번 운행할까 말까다. 인건비를 제외하고 매년 4억 원가량의 예산이 투입되는데 탑승료 수익은 4분의 1인 1억 원 안팎에 그친다.

다른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부산시는 지난해 10월 부산역을 출발해 감천문화마을과 다대포, 을숙도 등 서부산 관광지를 도는 ‘오렌지 라인’을 개통했지만 1년간 이용객은 7,000여 명에 불과하다. 8, 9월에는 이용객이 없어 아예 운행을 중단하기도 했다. 대구 중구청은 2014년 김광석길과 서문시장, 동성로 등을 오가는 ‘청라버스’를 도입했으나 극심한 운영난에 시달리다 2021년 결국 사업을 접었다. 2010년 운행을 시작한 경남 거제시 블루시티투어버스는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다 지난해 1월 이후 사실상 폐지됐다. 거제시 관계자는 “이용객도 없는데 예산을 계속 지원해가며 운영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며 “현재로선 재운행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시티투어버스 이용률이 저조한 이유로는 관광상품으로서의 매력이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11월 기준 전국 82개 지자체에서 운행 중인 302개 시티투어버스 노선을 살펴본 결과 단순 이동수단을 넘어 지역의 이야기를 담아낸 프로그램은 손으로 꼽을 만큼 적었다. 올해 남편과 함께 시티투어버스로 각 지역을 여행 중이라는 임순분(72)씨는 “흩어진 관광지를 한 번에 돌아볼 수 있어 여행할 때 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고 있긴 하지만 지역별 특색이나 별다른 차이점은 느끼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관광택시나 전동킥보드 등 개별 여행 수요에 맞춘 이동수단이 과거에 비해 늘어난 것도 시티투어 운행 실적을 떨어뜨린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 30대 관광객은 “혼자선 전동킥보드, 일행이 있을 땐 관광택시를 주로 탄다”며 “정해진 노선이나 시간에 맞춰야 하는 시티투어버스보다 비용 등 모든 측면에서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활성화 대책은 2층 버스, 지붕 없는 버스, 수륙양용버스, 캠핑버스 등 하드웨어를 바꾸는 단편적 조치에 머물러 이중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례로 울산시는 2015년 4억 원을 들여 2층 버스를 도입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운행연한도 채우기 전 7년 만에 폐차를 결정했다. 잦은 고장 탓에 지난해 수리비로 들어간 돈만 2,500만 원에 이른다.

세종 시티투어버스 외관. 1층은 관광안내소로 활용되고 2층엔 36개의 좌석이 있다. 세종시 제공

세종 시티투어버스 외관. 1층은 관광안내소로 활용되고 2층엔 36개의 좌석이 있다. 세종시 제공

전문가들은 미국 뉴욕 시티투어버스 ‘더 라이드(THE RIDE)’처럼 경쟁력 있는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더 라이드는 관광과 공연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극장형 투어버스 상품으로 뉴욕 여행객들의 필수코스 중 하나다. 강준수 안양대 관광학과 교수는 “버스 모양만 바꿔가며 매년 같은 코스를 뺑뺑이 도는 지금의 운행방식으론 효과를 보기 어렵다”며 “갈수록 소규모로 세분화되는 여행 흐름에 맞춰 관광객이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로 참여할 수 있는 체험형 관광상품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산=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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