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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보다 더 어두웠던 탄광촌을 지킨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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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보다 더 어두웠던 탄광촌을 지킨 여성들

입력
2023.12.06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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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 출신 박병문 작가, 미 맨해튼서 전시회
그림자처럼 산 선탄부 삶 담은 흑백작품 30점
"삶의 무게 숙명처럼 짊어진 그들 알리고 싶어"

탄광촌 출신 사진작가 박병문씨가 6일부터 미국 맨해튼에서 선탄부를 다룬 사진전시회를 연다. 박병문 작가 제공

탄광촌 출신 사진작가 박병문씨가 6일부터 미국 맨해튼에서 선탄부를 다룬 사진전시회를 연다. 박병문 작가 제공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했던 한국 여성 광부들의 고된 일상을 담은 사진 작품전이 미국 뉴욕에서 열린다. 가슴 아픈 사연을 마음 한편에 간직한 채, 외진 강원도 탄광촌에서도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살아야 했던 어머니와 누이들의 얘기다.

탄광촌을 오가며 다큐멘터리 사진활동을 해온 박병문(64) 작가는 6일부터 11일간 미국 뉴욕 맨해튼 갈라아트센터에서 여성 광부 작품전(A Female Miner)을 연다. 탄광을 주제로 한 전시답게 모두 흑백으로 인화된 작품 30점은 태백과 삼척 탄광 선별장에서 일하는 선탄부(選炭婦)의 삶을 기록했다. 선탄부는 지하 1,000m 작업장에서 캔 석탄 더미 속에서 잡석과 이물질을 가려내는 일을 하는 여성 광부다. 순도가 높은 석탄을 생산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지만, 대부분이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그림자처럼 살아왔다. 탄광사고로 남편을 떠나 보낸 이들이 채용된 경우가 대부분인 데다, 여성이 나서는 것을 금기하는 탄광촌 분위기 탓이었다.

박 작가는 출국 전 본보 통화에서 “칠흑 같은 밤보다 더 어두운 선탄장을 삶의 터전 삼아 가족을 지켰던 강한 여성들을 담은 기록”이라며 “내년부터 태백 장성광업소와 도계광업소 폐광이 예정돼 자칫 잊힐 뻔한 이들의 삶을 세계 문화의 중심인 맨해튼에서 알리게 돼 의미가 있다”고 소개했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은 그가 2007년부터 10년여간 태백과 삼척 탄광을 찾아 기록한 여성 광부의 일상이다. 꽃다운 나이에 화려한 메이크업 대신 검은 탄가루를 묻혀야 했던 사연, 시커먼 분진이 가득한 마스크를 쓴 여성 광부의 모습 등 호락호락하지 않은 탄광촌의 하루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밤샘 작업을 마치고 질퍽한 눈 위를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진한 삶의 향기가 느껴졌다”는 박 작가는 “무거운 삶의 무게를 숙명처럼 짊어진 그들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올해 초 포트폴리오를 미국 스튜디오에 보냈고, 갤러리 이사진 모두 한국 탄광촌의 모습을 담은 작품에 관심을 나타내며 전시가 성사됐다.

강원도 탄광촌에서 일하는 여성 광부인 선탄부의 일상을 다룬 사진전이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탄광촌에서 활동한 다큐멘터리 작가의 작품 30점을 감상할 수 있다. 박병문 작가 제공

강원도 탄광촌에서 일하는 여성 광부인 선탄부의 일상을 다룬 사진전이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탄광촌에서 활동한 다큐멘터리 작가의 작품 30점을 감상할 수 있다. 박병문 작가 제공

박 작가가 선탄부의 일상을 담기까지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여성이란 이유로, 아픈 과거가 있다는 이유로 스스로 세상에 알려지기를 꺼려했던 이들을 설득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개월을 매일 탄광으로 출근하다시피 한 그의 열정에 선탄작업자들이 공감했고, 삶의 현장을 렌즈에 담을 수 있게 됐다. 박 작가는 “나 역시 광부의 아들로 자랐기에 여성 광부의 인생을 공감할 수 있었다”며 “어두운 곳에서 여성이기 이전에 든든한 광부의 역할을 다했던 그들의 삶을 꼭 기억해 달라”고 강조했다.

6일부터 미국 맨해튼에서 여성 광부를 주제로 한 사진전시전을 여는 박병문 작가. 박병문 작가 제공

6일부터 미국 맨해튼에서 여성 광부를 주제로 한 사진전시전을 여는 박병문 작가. 박병문 작가 제공



박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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