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프로 등 연이은 투자, 유치 비결 문의 전화
모든 산업 고루 육성, 비결 안 숨기고 적극 설명
혁신특구 지정 총력 "배터리 초격차 거점 도시"
경북 포항시 배터리첨단산업과에는 4~5개월 전부터 타 시·군 기업유치 담당 공무원들의 문의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이차전지(배터리) 양극소재 국내 1위 기업 ‘에코프로’가 포항시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7월에는 포항이 정부의 국가첨단전략산업 양극재 산업 특화단지로 지정되자, 그 비결(노하우)을 묻는 내용이다.
포항시는 문의가 올 때마다 숱한 시행착오로 어렵게 터득한 유치 노하우를 숨김없이 풀어낸다. 세계 시장을 평정한 한국 배터리가 굳건히 정상의 자리를 지키려면 국내 이차전지 산업 전체가 발전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권혁원 포항시 일자리경제국장은 6일 본보 통화에서 “이차전지 산업 분야가 원료와 소재, 재활용까지 다양한데 모든 기업을 포항시가 독점해선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며 “세계 시장을 석권하려면 국내 이차전지 도시들이 한데 뭉치고 노하우를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코프로로 시작된 이차전지 기업 유치
포스코라는 탄탄한 대기업 아래 철강산업 일변도였던 포항시가 이차전지 기업 유치에 본격 나선 건, 2016년 8월 18일 이강덕 포항시장이 이동채 에코프로 회장을 만나고 나서다.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차전지 소재기업에 주목한 이 시장은 배터리 핵심소재인 양극재 생산에 주력해 온 에코프로를 직접 찾았다.
이 시장은 포항시 외에도 여러 지자체가 에코프로에 눈독을 들인다는 소문을 듣고는, 여름휴가를 미루고 한달음에 본사가 있는 충북 청주시로 달려갔다. 당시 대규모 공장 건설이 시급했던 에코프로는 이 시장의 적극적인 구애로 이듬해 포항시 북구 흥해읍 영일만1산업단지와 영일만4산업단지에 1조 원을 투자해 양극소재 생산 공장을 착공했다.
일찍이 이차전지에 눈을 뜬 포항시는 배터리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각종 규제들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걸림돌이 되는 사실을 직시했다. 여기에 전기차 수요 증가와 니켈, 리튬 등 이차전지 원료 가격이 치솟는 점을 감안해 폐배터리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포항시는 2019년 정부의 배터리 리사이클링(재사용·재활용) 규제 자유 특구 조성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 결과 포항시 남구 장기·동해면·구룡포읍 일대 조성된 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와 포항시 북구 흥해읍 영일만산업단지가 동시 지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배터리 규제 자유 특구로 날개 단 포항
특구로 지정되고 나니, 이제는 기업들이 먼저 문을 두드렸다. 배터리 리사이클링 기업들이 속속 뛰어들면서 수년간 황무지나 다름없던 산업단지 두 곳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게다가 리사이클링으로 원료 추출 산업이 가능해져 관련 기업들의 투자가 이어졌다.
이로써 포항시는 양극재 생산기업 에코프로와 이차전지 소재 음극재를 생산하는 포스코퓨처엠, 배터리 리사이클링 기업까지 원재료, 전구체, 양극재, 음극재에 폐배터리 재사용과 재활용 등 배터리 전주기를 모두 품게 됐다.
포항시는 2021년 말 전국 최초로 ‘이차전지산업 육성을 위한 지원시설 설치 및 운영 조례’를 제정했고, 이듬해 지자체로는 가장 먼저 배터리 기업 지원 전담부서를 신설했다. 지난 5일에는 포항 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에서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자리한 가운데 폐배터리를 분쇄해 리튬과 니켈을 추출하는 시설과 배터리 잔존가치를 평가하는 ‘전기차 폐배터리 자원순환 클러스터’ 착공식이 이뤄졌다.
김신 포항시 투자기업지원과장은 “항상 기업의 애로사항을 먼저 파악하고 한 발 앞서 준비한 것이 대규모 투자를 이끌어 낸 비결“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혁신특구로 배터리 초격차 선도"
포항시에 따르면, 2016년 에코프로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9조2,800억 원이 넘는 투자 유치를 끌어내 11개 공장이 가동 중이다. 또 4,300여 개의 일자리가 생겼다.
이차전지는 철강 일변도의 포항지역 산업지도를 바꿔놨다. 9월 기준 포항지역 수출·입 조사에서 이차전지 산업은 포항시 전체의 37%에 달하는 38억 달러(약 4조9,582억 원)의 수출을 기록했다.
포항시는 배터리 산업 육성에 온 힘을 쏟아 오는 2030년에는 전기차 1,200만 대분인 100만 톤(t)의 양극재를 생산해 매출 100조 원에 고용인원 1만5,000명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배터리 규제 자유 특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배터리 글로벌 혁신특구’ 지정에 힘쓰고 있다.
글로벌 혁신특구는 첨단분야 제품과 기술 개발을 위해 규제부터 실증, 인증, 허가, 보험까지 ‘원스톱’ 체계를 구축해 기업의 세계시장 진출을 돕는다. 자유 특구가 대규모 기업투자 유치와 산단 활성화에 집중됐다면, 혁신특구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지역 기업들이 규제에 얽매이지 않고 해외로 진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 정명숙 포항시 배터리첨단산업과장은 “국내외 유수 대학들이 기업들과 협업하며 함께 기술 개발을 꾀하는 글로벌 이차전지 연구센터를 구상 중”이라며 “혁신특구로 지정되면 포항시는 배터리 산업의 전후방을 연결하는 거점 도시로 거듭나고 한국 배터리가 세계시장의 초격차를 선도하는 생태계가 구축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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