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자유연대 한국동물복지연구소, 185명 수의사 조사
국내 수의사 10명 가운데 9명 이상이 동물학대로 의심되는 동물을 진료한 경험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 부속 한국동물복지연구소가 전국 임상수의사 185명을 대상으로 동물학대 진료 경험을 조사한 결과, 175명(94.6%)이 "학대로 의심되는 동물을 진료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실제 신고한 경우는 11명(6.3%)에 그쳤다.
전치 4주 이상의 중상 동물을 진료했다고 답변한 수의사가 107명(61.1%∙중복응답)에 달했고, 경상 동물(전치 3주 이상)은 110명(62.9%), '학대(의심)로 동물이 사망했다'는 35명(20.0%)이었다.
학대(의심)로 인한 가장 많은 상해 진료 경험은 골절 등 근골격계 손상(67.4%), 뇌진탕(41.4%), 안구돌출 등의 안과병변(47.3%), 폐출혈(33.7%) 등 물리적 손상이 다수를 차지했으나, 방치로 의심되는 영양실조(34.3%) 사례도 확인됐다. 이는 학대(의심) 진료 경험이 없거나 응답하지 않은 경우를 제외한 169명의 수의사가 중복 응답한 결과다.
실제 신고를 한 경우는 11명(6.3%)에 그쳤다. 신고하지 않은 이유로는 '보호자와의 갈등을 원하지 않아서'가 93명(57.4%)으로 가장 많았다. '신고해도 사건이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가 73명(45.1%), '법적으로 곤란해지는 상황을 원하지 않아서'가 53명(32.7%) 등으로 뒤를 이었다.
연구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0년까지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송치된 2,751명 중 구속된 사례는 5명에 불과하다. 더욱이 동물보호법 제39조에 따르면 수의사는 학대를 받는 동물을 발견할 때 지체 없이 관할 지자체나 동물보호센터에 신고해야 하지만, 신고하지 않았을 때 불이익이 없다. 또 신고자의 인적사항이 공개되더라도 이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어 보호조치도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연구소 측의 설명이다.
반면 앞으로 동물학대 발생 시 대응 관련 기관에 협조하겠다는 응답자는 185명 중 178명(96.2%)에 달했다. 연구소 측은 동물학대 대응을 위한 체계가 정비될 경우 대부분의 수의사가 관련 기관에 협조할 의사가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로 분석했다.
가해자로 의심되는 사람으로는 보호자(반려인)가 117명(66.9%)으로 가장 많았고 보호자 주변인도 105명(60.0%)에 달했다. 연구소는 "동물학대는 주변인들에 의해 은밀하게 이뤄진다는 점에서 아동학대나 가정폭력과 유사성이 높다"며 "의료인을 대상으로 아동학대 예방 및 선별 등을 위한 매뉴얼을 마련한 것과 마찬가지로 수의사에게 적용할 수 있는 동물학대 대응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해외에서는 동물학대 시 수의사의 대응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미국수의사회는 '학대 및 방치가 의심되는 동물 발견 시 수의사의 효과적인 대응을 위한 지침'을 발간, 대부분의 주에서 수의사에게 동물학대 의심 사례를 보고하도록 권장 또는 의무화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을 면제해 준다. 영국의 경우 왕립수의학기관이 발간한 '수의사 직업 행동 강령 지침'을 통해 동물학대 의심 시 정보를 당국에 올바르게 전달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혜원 한국동물복지연구소장은 "아동학대 사건이 주로 의료기관과 같은 제3자에 의해 발견되는 점을 고려하면 동물학대 감시에서도 수의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동물학대 대응 및 예방을 위한 세부적인 법적 장치와 수의사 제보자 보호 방안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수의사 대상 동물학대 진료 경험 및 동물학대 대응체계 조사 보고서'는 동물자유연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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