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정책연구원·대한변협 공동학술대회
'재판 지연' 근본 원인과 해결 방안 토론
사법부가 풀어야 할 최대 현안인 '재판 지연' 문제를 두고, 법원이 처음으로 공식적인 논의의 장을 열었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 시절 개혁 차원에서 이뤄졌던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와 △법원장 추천제(일선 판사들이 후보를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최종 임명), 사법부에서도 거스르지 못하는 대세가 된 △젊은 판사들의 일과 삶 균형(워라밸) 추구 등이 도마에 올랐다.
대법원 산하 연구기관인 사법정책연구원은 4일 대한변호사협회와 함께 학술대회를 열고, 재판 지연 실태와 해결 방안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박형남 사법정책연구원장은 "재판 통계지표가 나빠진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으나, 법관의 소명의식 부족과 게으름을 탓하는 일각의 주장엔 동의하기 어렵다"며 "성급한 조치만 취하면 오히려 졸속 재판과 법관의 사기 저하를 초래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쟁점1: 법원장 추천제는 조직을 망쳤나
학술대회에선 고법 부장 승진제 폐지와 법원장 추천제에 대한 논의가 정면으로 오갔다. 정치권과 법원 일각에서는 "고법 부장 승진이 사라지며 열심히 일할 동기가 사라졌고, 법원장 추천제 이후 법원 수뇌부가 사명감을 강조하는 대신 인기에 영합하게 됐다"고 비판해왔다. 첫 발표를 맡은 전휴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인센티브 시스템과 각급 법원의 검증 시스템이 붕괴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진단했고, 이영창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판사) 역시 "법원장 추천제가 재판 지연에 적어도 좋은 영향을 주진 않았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현장에선 현직 판사들의 반론도 이어졌다. 정찬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고법 부장이 폐지된 건 2019년이지만, 법관인사 이원화(지법·고법 인사 분리)는 이미 2011년에 실시됐다"며 "(승진 인센티브 논리에 따르면) 2011년부터 재판장기화가 발생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맞섰다. 정 부장판사는 또 "올해 초까지만 해도 당사자들 말에 귀 기울이는 '충실한 재판'이 화두였는데, 비판이 나오자 법원장 추천제로 임명된 법원장들도 장기미제전담법관 등 배치를 통해 강력한 사법행정권을 발동하기 시작했다"면서 논의가 호도되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쟁점2: '워라밸'이 만악의 근원인가
법원 조직 내에서 뜨거운 화두였던 'MZ 판사'에 대한 담론도 이어졌다. 사법부 안팎에선 이른바 'MZ세대' 판사들이 법원에 들어오면서 '(합의부 기준으로) 일주일에 세 건만 선고하겠다'는 암묵적 합의가 생겼고, 이 때문에 재판 지연 문제가 악화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해선 그런 '워라밸' 추세를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젊은 판사들에게 동기를 제공할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 연구위원은 "일과 삶 균형을 추구할 수 없다면 유능한 법조인재를 충원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며 "업무량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적정 처리건수를 재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고유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법관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주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관 수 증원과 효율적 소송 절차의 도입 필요성에는 이견이 없었다. 전 교수는 "민사소송에서는 특히 예측가능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소송 초기 당사자들과 기일 횟수, 증거조사 방법 및 순서, 선고 시기 등을 구체적으로 협의해 정해야 한다는 변호사들의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복잡한 사건이 증가하고 있으므로 전문법관 임명제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며 "재판 당사자들의 의도적 재판지연(고의적 재판부 기피신청 등)이나 합당하지 않은 주장 등에 대해선 소송지휘권을 적절하게 행사해 재판을 이끌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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