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경찰청 증거 불충분 불송치
광주고법, "부정 청탁 있었다"
탈락자에 3000만원 배상 판결
警, 채점 조작 조사 요구 묵살 정황
당시 학과장 등 3명 재고발돼 주목
지난해 4월 말 조선대가 발칵 뒤집혔다. 2021년 12월 말 실시된 공연예술무용과 강의 전담 교원 공개 채용 심사 과정에서 해당 학과장이 특정 응시자 합격을 위해 심사위원에게 부정한 청탁을 하고 대학 측이 돌연 심사 기준을 바꾸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는 폭로가 나오면서다. 이른바 교수 채용 비리 의혹이다. 당시 학내외 구성원들 사이에서 공론화한 이 문제는 두 달여 뒤 경찰 수사로 번졌다. 교육시민단체인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이 조선대 총장과 교무처장, 해당 학과장 등 3명을 업무방해 등 혐의로 광주경찰청에 고발한 것이다. 여기에 해당 공채에 응시했다가 탈락한 A씨가 조선대를 상대로 전임 교원 임용 무효 확인 청구 소송을 내면서 교수 채용 비리 의혹은 법정 공방으로도 이어졌다. 경찰은 1년 가까이 수사를 끌더니 올해 5월 20일 학과장 등 3명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항소심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광주고법 민사2부는 경찰의 불송치 결정이 나온 지 넉 달 뒤 "공개 채용 절차엔 부정한 청탁이 개입되고 관련 법령을 위반해 심사 기준이 변경된 잘못이 있다"며 "조선대는 A씨에게 위자료 3,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심사가 공정하게 이뤄졌다면 A씨가 임용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불공정한 심사로 인해 A씨는 인격권 등을 침해당하고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항소심 법원이 공개 채용 과정에 불법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하면서 경찰은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당장 봐주기 수사 논란이 도마에 올랐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서류 심사와 공개 강의, 면접까지 총 3단계로 진행된 채용 심사 과정에서 당시 학과장 B씨가 특정 응시자 합격을 위해 공개 강의 심사위원에게 부정한 청탁을 했는지 여부다.
A씨와 시민모임은 "공개 강의 심사가 있던 2021년 12월 28일 B씨가 한 심사위원에게 '첫 번째'라고 이야기했는데, 이는 공개 강의 순서 1번인 C씨에게 높은 점수를 주라고 부정한 청탁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 등은 B씨의 '첫 번째' 발언을 들은 조교의 진술을 근거로 제시했다. 당시 심사 진행을 맡았던 이 조교는 1심 재판에선 B씨의 발언에 대해 "제대로 들은 게 아니라, 그냥 기분 탓인가 하고 그냥 넘어갔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가, 2심에선 "B씨가 '첫 번째'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털어놨다. 또 교수들로부터 간적적인 압박과 회유를 당한 사실도 있다고 했다. 이에 B씨는 "첫 번째라고 말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조교의 증언을 신빙할 만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조교가 일을 그만둔 후 두 차례 작성한 사실확인서엔 B씨의 발언을 들었고, 교수들의 압박과 회유가 있었다는 사실이 명확히 기재돼 있다"며 "조교 신분에 따른 불이익을 입을 염려가 없어지자, 당시 임용 절차가 불공정하게 이뤄졌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사실확인서를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심사위원이 B씨에게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의 방법으로 C씨의 공개 강의 순서를 알려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B씨가 외부 강의실에서 C씨의 순서를 알고 심사위원에게 C씨에게 높은 점수를 달라는 취지로 청탁하기 위해 '첫 번째'라고 말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했다. 재판부가 B씨의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위반 가능성을 꼬집은 것이다. 또 대학 측이 공개 강의 당일 갑자기 심사 평가 기준을 변경한 것도 교육공무원임용령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대학 측은 응시자들이 해당 계열 교수와 해당 과목을 이수한 학생 등을 대상으로 20분 내외 공개 강의와 10분 안팎의 질의응답을 하도록 돼 있던 것을 30분 강의로 바꾸고 질의응답은 진행하지도 않았다.
경찰은 이와 관련, B씨 등에 대해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불송치 결정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 경찰이 수사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공개 강의 당시 응시자들에 대한 질의응답이 없었는데도 심사위원들(5명)이 '질문 요지에 대한 답변이 명확했는지 여부'를 묻는 평가 항목에 각각 배점(2~5점)한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확인된 것이다. 업무 공정성을 방해할 충분한 위계가 있다고 의심되는 대목이다. A씨는 "질의 응답 평가 점수가 조작됐는지 여부를 수사해 달라고 경찰에 수차례 요구했지만 번번이 묵살됐다"고 말했다.
참다못한 A씨는 최근 항소심 판결을 근거로 B씨와 당시 심사위원 등 3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경찰은 또다시 같은 결론을 내릴까, 아니면 다른 결과를 내놓을까. 사실상 재수사에 나선 경찰이 어떤 판단을 할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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