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이 발탁… 여성·소수인종 권리 수호
바이든 “미국 아이콘, 중도·실용·통합 추구”
미국 최고 사법기관의 ‘유리천장’(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벽)을 깬 샌드라 데이 오코너 전 연방대법관이 1일(현지시간)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그에 대해 “미국의 아이콘(상징적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일 성명을 통해 오코너 전 대법관이 치매에 따른 합병증으로 숨을 거뒀다고 발표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부음 기사에서 “대법원장이 아니었는데도 오코너 전 대법관의 재임 기간 중 대법원은 종종 ‘오코너 법원’으로 불렸다”며 “그는 넓은 대법원 이념 지향의 정중앙에 자리 잡고 미국 법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전했다.
1930년 미국 텍사스주(州) 엘패소에서 태어난 고인은 애리조나의 목장에서 자랐다. 16세에 미국 스탠퍼드대에 입학한 그는 19세에 같은 대학 로스쿨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했고, 최상위권 성적으로 졸업했다. 하지만 로펌들이 그를 채용하지 않았고, 캘리포니아 주검찰 사무실에서 겨우 일자리를 찾았다고 한다.
오코너가 미국의 첫 여성 연방대법관으로 발탁된 것은 1981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에 의해서였다. 보수 성향이었지만 대법관이 된 뒤에는 여성과 소수 인종 등 소수자의 권리 수호에 기여했다. 임신 6개월까지 여성의 임신중지(낙태) 권리를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례(1973년 연방대법원 판결)가 1992년 도전을 받았을 때 중재 역할을 자임해 지켜 냈다. 2003년에는 대입 전형의 소수 인종 우대 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을 옹호해 살리기도 했다.
고인은 2006년까지 25년간 연방대법관을 지내고 스스로 물러났다. 치매에 걸린 남편을 간병하기 위해서였는데, 당시 그는 “젊은 시절 남편이 나를 위해 다 포기했다”고 말했다. 2018년 치매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히고 공개 활동을 중단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일 성명을 내고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오코너에 대해 “경력 내내 안정된 중도였고 실용적이었으며 통합을 추구했다”고 돌아본 뒤, “그의 모든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품위와 더불어 사실, 조국, 시민권·공동선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헌신을 존경했다”고 밝혔다. 이어 “로펌들이 여성들에게 변호사 대신 비서 일을 찾아보라고 권하는 게 다반사였던 시절에 고인은 차별을 극복했다”며 “민주주의가 작동하려면 우리가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고 미국인으로서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게 필수라는 것을 그는 알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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