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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광고와 우승광고

입력
2023.12.04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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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7일 일간지에 게재된 LG 트윈스의 '꼴찌광고'. LG 제공

2008년 11월 7일 일간지에 게재된 LG 트윈스의 '꼴찌광고'. LG 제공


‘야구 시즌은 끝났어도 팬 여러분의 사랑 LG는 잊지 않겠습니다.’ 2008년 11월 7일 각 일간지에 눈길을 끄는 전면 광고가 게재됐다.

보통 프로야구 우승팀의 광고가 관례인데 그해 LG 트윈스의 성적은 꼴찌였다. ”부진한 성적보다 더 가슴이 아팠던 것은 뒤돌아서 가는 팬 여러분의 모습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패배의 순간에도 떠나지 않고 함께 해주신 팬 여러분 덕택에 다시 뛸 수 있는 용기를 얻었습니다”라고 적힌 구구절절한 문구.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야구장을 떠나는 아이의 뒷모습이 담긴 일러스트가 ‘비애(悲哀)’를 극대화한, 전례 없는 ‘꼴찌광고’는 돌아서려던 팬들의 감정선을 자극했다. ‘코끝이 찡하다’ ‘그래도 LG팬이라는 게 자랑스럽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2003년부터 그때까지 LG의 순위는 ‘6-6-6-8-5-8’. 암흑기를 통칭하는 ‘비밀번호’로 통했던 참담한 성적의 끝자락에서 LG가 내놓은 사과문이자 묘안이었다. 당시 LG그룹 관계자는 “부진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LG 트윈스에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준 팬들에 대한 감사의 뜻에서 광고를 기획했다”고 했다.

구단은 부진한 성적을 만회할 각종 아이디어를 짜냈고 선수들은 팬서비스에 충실했다. 은퇴한 LG 출신 스타 박용택은 이름 끝자인 ‘택’이 붙은 수많은 별명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건 ‘팬덕택’이라며 팬들의 바짓자락을 잡았다.

LG가 직감했던 ‘팬이 떠날 공포’는 실제로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을 때 모두가 체험했다. 사인 한 장, 사진 촬영 한 번에 인색했던 선수들은 “팬 없는 스포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고개를 숙였다. 한국에서 ‘노쇼’로 공분을 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그제야 팬들이 아쉬웠는지 무관중 경기에선 허공에 악수하는 ‘생쇼’를 벌여 헛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팬 없는 스포츠는 의미 없는 공놀이일 뿐이라는 최희암 전 농구감독의 말이 현실이 됐던 것이다.

눈물겨운 노력 덕분에 LG 팬들은 떠나지 않았다. 2016년 108년 만에 ‘염소의 저주’를 풀고 월드시리즈 정상에 섰던 시카고 컵스와 그 팬들처럼 말이다. 컵스가 우승하기까지 자식들에게 유언으로 “넌 우승 순간을 지켜봐라”라고 했다는 말부터 세상에서 가장 슬픈 직업은 ‘시카고 컵스 팬’이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래도 컵스 팬들은 거의 매 경기 홈구장 리글리필드를 꽉 메웠다.

올해 LG는 29년 만에 ‘우승광고’를 펼쳤다. 광고가 실린 지면을 ‘굿즈’ 삼아 소장하려는 팬들이 늘면서 디지털 시대에 보기 드문 신문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 종합 일간지와 스포츠지, 경제지의 광고가 각각 달라 우승을 추억하고 싶은 팬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일간지엔 ‘모두의 축제, 모두의 승리’, 스포츠지엔 ‘이것은 점퍼가 아니라, 믿음이었다’, 경제지엔 ‘도전의 힘을 믿습니다’로 시작한 감사 인사였다.

세상에 나온 구본무 선대 회장의 유산 롤렉스 시계와 아와모리 소주는 끊임없이 구전처럼 회자됐다. LG 구단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은 충성도 높은 팬이 있기에 쓰인 서사다. 염경엽 감독도, MVP 오지환도 우승 후 “오래 기다려준 팬들”을 가장 먼저 언급했다. 팬과 함께 이뤄낸 LG의 우승, LG그룹의 우승광고를 만든 시작은 15년 전 꼴찌광고가 아니었을까.

성환희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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