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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도 국방장관도 ‘정신전력’ 이구동성… ‘바름(正)’에서 ‘정기(精)’로[문지방]

입력
2023.12.0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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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국가의 안보에 있어 값비싼 무기, 첨단 전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장병들의 교육훈련과 대적관, 그리고 정신자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지난달 6일 중장 진급신고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6일 군 주요 지휘관을 맡게 될 중장 진급자들에게 '삼정검'(장군을 상징하는 검)과 '수치'(직책 등이 쓰인 끈으로 된 깃발)를 수여하면서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장병들이 확고한 국가관과 대적관, 안보태세를 가질 수 있도록 정신교육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월 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중장 진급 보직 신고 및 삼정검 수치 수여식을 마친 후 경례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윤 대통령 "값비싼 무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장병들의 정신자세"

윤 대통령이 정신전력을 강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8월 여름휴가 마지막 날임에도 국방혁신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면서 "싸워서 이기는 강군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장병들이 확고한 대적관과 국가관, 군인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며 정신전력을 강조한 바 있죠. 지난달 발언을 서두에 언급한 건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사흘 간격으로 연달아 정신전력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신 장관은 지난달 3일 기자들과 만나 초급간부 이탈 문제와 관련해 "군인답지 않은 군인정신을 갖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회분위기"를 언급하며 "북한과 6·25전쟁을 제대로 배우지 않으니 군 생활을 싫어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역시 정신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신 장관은 취임식에서 선진 강군 5대 중점과제 중 정신전력 강화를 첫손에 꼽기도 했습니다.

최근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군사정찰위성 발사, 9·19 남북군사합의의 효력 정지를 둘러싼 남북 접경지대의 긴장 고조 등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이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장병들의 정신전력 강화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입니다. 천안함 피격, 연평도 도발, 두 차례 서해교전 등 남북 간 군사 긴장감이 극에 달했던 199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에 비해 남북 화해 국면을 겪으면서 정신 무장이 점차 느슨해진 건 사실이라는 게 군 안팎의 공통된 평가입니다.

국방부는 정신전력을 강조하는 또 다른 배경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사례로 들었습니다. 강국 러시아가 압도적인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군의 결사항전 앞에 고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 베트남전쟁 때도 미군은 공산주의 군사조직인 베트콩의 게릴라 전술에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신원식 국방부장관이 11월 21일 공군작전사령부 한국항공우주작전본부 전투지휘소에서 작전현황 보고 청취 후 장병 격려사를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정훈의 변천사… 정치(政)→바름(正)→정기(精)

군은 정신전력 강화를 위해 15년 만에 정훈국을 부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군 조직에서 '정훈'이라는 용어는 2008년 3월 사라졌습니다. '정신전력'이 그 자리를 대신해왔죠. 국방부는 "장병 정신전력 강화를 위해 정신교육을 담당하는 조직을 확대, 개편하겠다"며 "새로 발간하는 기본 교재에는 북한을 우리의 명백한 적으로 명시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지난 문재인 정부 때 주적 개념이 사라지고 '대한민국의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는 표현으로 대체됐었는데, 이를 다시 북한으로 되돌려놓겠다는 겁니다.

이번 조직 개편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정훈에서 '정'의 한자 뜻입니다. 먼저 정훈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냉전시대 이념 대결의 산물인 정훈은 주로 공산권의 정치훈련(政訓)을 의미했습니다. 소련에서 감시·통제 역할의 '정치공작'을 만들었고, 중국의 군인 출신 정치인이자 대만 총통을 역임한 장제스는 이를 군사작전의 개념으로 재정립했습니다. 그는 정치작전을 "적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 및 무력 투쟁 이외의 모든 투쟁"으로 정의해 발전시켰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손을 잡은 채 함께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오고 있다. 고영권 기자

우리 군에서는 광복군에서 '정훈처'를 처음으로 설치했습니다. 광복 이후엔 남로당의 정치공작에 맞서 '정치국'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미군이 정치국에 반대했습니다. 국방부가 발행한 정훈오십년사를 보면 미군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로 정치적 중립을 중시하는 민주국가 군대에서는 있을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정훈국입니다. 당시 국방부는 "국군의 정훈활동은 일당 독재하의 군 내 정치훈련과 원천적으로 다르며 △북괴의 심리전 공세에 대처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의 신념 구축과 투철한 군인정신 함양을 통한 전투력 증강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같은 정훈의 개념이 수십 년간 유지되다 지난 문재인 정부 당시 바를 정(正)을 쓴 정훈(正訓)으로 바뀌었습니다. 병과 이름도 '공보정훈'으로 바뀌면서, 이념에서 벗어나 바르게 가르치는 동시에 제대로 알리는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한 군 관계자는 당시를 회상하며 "군이 오히려 정치에 속박됐던 시기"라며 "훈련 실시 사실조차 제대로 알릴 수 없었고, 만에 하나 보도라도 되는 날엔 지휘자가 청와대에 불려가 질책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군이 한껏 움츠러들었던 시기였던 셈이죠.

그런데 이번에 부활하는 정훈(精訓)은 정신훈련으로 다시 바뀔 예정입니다. 냉전시대의 유산인 정치훈련도 아니고, 바르게 가르치는 것도 아닌 정신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지로 풀이됩니다.

11월 5일 서울 용산구 인근에서 해병대 사관 81기 동기회 등 해병대 예비역들이 1박 2일 동안 해병대원 순직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과 해당 사건을 수사한 박정훈 전 해병대 전 수사단장(대령)의 명예 회복을 촉구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뉴시스


최고의 정신교육 교재는 지휘관의 솔선수범

전시에서 두려움을 이겨내는 정신력은,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이 강조한 것처럼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려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올해 뜨거운 국방 이슈였던 '해병대 순직'과 '육사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 등이 바로 정신전력을 강조해서 발생한 부작용이기 때문입니다. '까라면 까라',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식의 구시대적 군인정신은 합리적인 판단보다 무리한 작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성과를 내기 위한 욕심과 맞물린다면 불필요한 희생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또 '올바른 역사관'을 이유로 논쟁적인 사안에 이념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적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지켜내겠다는 결의와 사명감은 어쩌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고 배운 대로 습득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장병들에게 북한과 6·25전쟁을 제대로 교육하는 것보다 지휘관이 보여주는 솔선수범이 장병들의 정신교육을 위한 최고의 교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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