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겨울을 지나가다' 조해진 소설가 인터뷰
소외된 사람들 수면 위로 끌어올리던 작가
"선물 같은 소설 쓰고 싶었다" 담백하게 그린
엄마의 죽음을 애도하는 딸의 일상으로 위로
전작 '여름을 지나가다'보다 편안하고 따뜻해
소외된 이들의 고통을 끝까지 응시하는 작가. '누구'의 부재를 통해 '여기'의 결핍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작가. 2004년 등단 이후 조해진(47)을 주로 표현한 문장들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달 말 그가 출간한 중편소설 '겨울을 지나가다'(작가정신 발행)는 의외의 작품이다. 췌장암으로 엄마를 떠나보낸 딸이 엄마의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을 담백하게 그린 이 소설은, 애도 일기와 같다. "함께 겨울을 지나갈 수 있는 선물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바람은 어디서 비롯했을까.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조해진 작가는 "내년이면 소설을 쓴 지 20년째"라고 입을 뗐다. "시대, 역사 이런 소설을 많이 썼다"면서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해선 안 되는 이야기들을 찾아서 썼는데 그것보다는 좀 더 보편적인 상처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별한 계기보다는 "한 번쯤은 더 쉽게 (독자에게) 다가가서 '내 이야기 같다', '내가 겪을 일 같다'고 쉽게 공감할 소설"을 내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자연스레 가족의 죽음과 부재를 소재로 삼게 됐다.
소설은 엄마를 간호하러 서울에서 생업을 접고 엄마의 집으로 온 화자 '정연'이 장례식 후에도 그 집에서 홀로 지내는 시간을 담았다. 함께 남은 강아지 '정미'와 보내는 겨울은 어둡고 춥지만 봄으로 향한다. 엄마의 집, 엄마가 혼자 운영하던 작은 음식점, 엄마가 다니던 동네 미용실과 목공소 등을 다니며 몰랐던 엄마의 모습을 하나씩 만나면서 일상을 회복해 가는 것. 공간은 타인의 일상을 유추·상상하며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확실한 매개다. 작가는 "풍요롭고 온기가 있는 공간을 그렸고, (그래서) 그 속의 인물들이 더 성숙하게 서로의 상처를 지켜봐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했다.
서로를 보듬는 관계는, 작가가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였다. 정연과 목공소 주인 '영준'은 그런 메시지 그 자체다.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갖고 한발 더 다가갈 줄 아는 사람. "사회적인 죽음이 많지만, (그것에 대해) 무관심하고 의심하고 극단적으로 조롱하는 시대"에 "적극적으로 싸우지는 못해도 누군가의 고통과 죽음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그런 인물이 참 귀해서, 그 정도의 용기라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기대를 담은 캐릭터들이다. 덕분에 소설에는 희망이 빼꼼히 보인다.
겨울이란 계절 배경은 죽음을 대자연 속에서 바라보게 한다. 목차도 밤이 연중 가장 긴 '동지'에서 가장 추운 '대한', 추운 날씨가 누그러지는 '우수'라는 절기를 따라간다. 엄마가 아끼던 모과나무에 엄마의 유골 일부가 묻히고, 날이 풀리면서 나무에는 싹이 튼다. "소설 마지막에도 썼듯이 (존재하는 것은 죽음 후에도) 다른 방식으로 현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는 작가는 "떠난 사람이 되돌아올 수 없으나 자연은 순환하고 반복한다는 것에서 인간은 많이 위로를 얻는 것 같다"고 했다.
작가는 '독자에게 쓰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이런 시대에 여전히 소설을 읽어주어 고맙고 이런 시대에 여전히 소설을 읽을 수밖에 없다는 게 미안합니다." '이런 시대'가 무엇인지를 물었더니 "나 혼자만 잘 살면 된다 혹은 잘 살고 싶다 이런 마음이 만연하고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콘텐츠(문학)보다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시대"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작가는 계속 써나갈 것이다. "한 인물이 자기 상처를 타인에게서 발견하고,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연대하면 어떨까, 서로에게 빛이 되면 어떨까, 그렇게 점점 (소설 세계가) 확장된 것 같아요. 우리에게 있는 작은 휴머니티를 잊지 않게 하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현재는 분쟁 지역에서 일하는 인물들을 다룬 '빛의 영원'을 계간지 문학동네에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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