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 변상일 9단 백 박정환 9단
승자조 결승 <2>
바둑을 처음 본 사람들이 가장 신기해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복기(復棋)다. 프로들이 몇십 수를 그렸다가 치우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 그 엄청난 기억력에 놀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게 긴 수순을 기억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바로 매 수마다 각각의 의미를 갖고 두었기 때문이다. 내가 뒀던 수의 이유와 맥락이 연결돼 필름처럼 완성되는 것이다. 만약 아무 연결고리 없는 지점에 돌을 무작위로 놓아 두고 복기해내라고 한다면 프로들 역시 크게 헤맬 것이다. 이것을 반대로 풀어본다면 내 실력을 늘리고 싶을 경우 반드시 복기가 가능한 대국을 두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복기가 가능하다는 것은 나름대로 생각한 최선의 연결고리를 끝까지 이어나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진정성을 가진 단 한 판의 대국이 10판의 ‘팔 운동’보다 효과가 크다.
백1, 3은 필연적인 수순. 흑4의 붙임 역시 흑의 유일한 선택지다. 백5, 7로 외곽을 막은 것 역시 정수. 3도 백1에 끼워 흑돌 다섯 점을 잡으려다간 흑2, 6의 수순으로 우변이 봉쇄된다. 흑이 유리한 진행. 실전 흑8까지 쌍방 최선의 수순으로 대형 정석이 진행되고 있다. 이때 놓인 백9는 간명한 선택. 여기서 인공지능은 인간이 상상하기 힘든 수순을 그려낸다. 바로 4도의 진행. 백1, 3으로 끊고 나온 후 백5로 1선을 젖힌다. 우상귀 수상전을 대궁소궁으로 잡기 위한 한 수. 이후 흑이 흑8, 10으로 우변을 봉쇄하려 할 때 백15, 17로 흑 세력의 약점을 추궁하는 변화를 그린다. 초대형 바꿔치기 결과 형세는 여전히 5 대 5다. 실전 진행은 흑이 흑10에 치중하자 우상귀가 빅 형태로 마무리됐다.
정두호 프로 4단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