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판매 책임 강화·녹취 의무화 법 2년 전 시행
가입자 대부분 "원금 보장 상품으로 들어" 주장
불완전판매 입증 관건, 피해 현실화 시 분쟁 불가피
60대 여성 박모씨는 2021년 2월 만기된 적금을 찾으러 은행을 방문했다가 '홍콩 주가연계증권(ELS)'이라는 생소한 상품을 추천받았다. 당시 은행원은 “예금 금리가 고작 1%대에 불과하니 안전하면서도 3%대까지 받을 수 있는 상품에 가입하라”고 권유했다. 은행원 재촉에 평생 예·적금밖에 몰랐던 박씨는 홀린 듯 가입했고, 30대 아들과 딸까지 같은 상품에 가입시켰다. 불안했던 아들 강모(38)씨가 가입 직전 재차 "원금 손해 없는 게 맞느냐"고 물었고, 은행원은 "홍콩에 외환위기가 터지지 않는 한 절대 손해 볼 일 없다"고 자신했다. 이 가족이 홍콩 ELS에 투자한 금액은 5억 원을 웃돈다.
해당 상품 만기를 앞둔 최근, 박씨는 은행에서 "원금의 최소 40%가량 손실이 예상된다"는 전화를 받았다. ELS 상품의 기본 개념인 '녹인(Knock-in)'이라는 말도 이번에 처음 들었다는 박씨는 해당 상품이 고위험 상품인지도 몰랐다. 강씨는 "가입할 때 원금 손실 가능성을 한마디라도 했다면 어머니도, 나도 절대 가입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사기를 당한 셈인데 증명도 어렵다고 하니 미칠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부터 수조 원대 손실이 예상되는 홍콩 ELS 사태 핵심은 고위험상품의 불완전판매 여부다. 판매한 금융사들은 불완전판매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원금 보장 상품이라 들었다”는 이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실제 피해가 현실화할 경우 집단소송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금융당국은 2021년 상반기 은행의 공격적 영업이 대거 이뤄졌다고 보고 그 배경을 들여다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5대 은행에서 2024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ELS 잔액은 약 8조4,100억 원으로, 하반기(3조9,200억 원)의 2배가 넘는다. 특히 은행에 불완전판매 책임을 강하게 지우는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안(2021년 3월 25일 시범 시행)과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녹취를 의무화한 자본시장법 개정안(5월 10일) 시행 이전 판매를 부추기는 관행이 상당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개정안 시행 이전 가입한 투자자들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2021년 3월 초 또 다른 은행에서 ELS 상품에 가입한 60대 A씨도 "홍콩이 망하지 않는 한 손실 볼 일 없는 안전한 상품"이라는 은행원의 권유에 가입했다. 그러나 최근 투자한 8,000만 원 중 3,000만 원 이상 손실이 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시 은행원이 손실 가능성을 언급한 기억이 없어 은행에 당시 녹취한 파일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은행 측은 "금소법 시행 전이라 녹음 파일이 없다"고만 답했다.
심지어 은행 직원이 근무지로 찾아와 상품 가입을 권유했다는 사례도 있다. 40대 B씨는 "남편 사망 보험금 4억 원을 지키고 싶어 무조건 원금이 보장돼야 한다고 얘기했다"며 "은행 직원은 '최근 10년간 한 번도 손실이 난 적 없을 만큼 안전한 상품이다, 원금 보장 못 받을 일은 없다'고 분명히 얘기해 가입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모든 내용은 B씨의 기억 속에 있을 뿐, 녹취로 입증할 수가 없다. B씨는 "가입 시기가 2021년 1월인 데다 은행 창구에서 가입한 것도 아니라 증거가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금소법 시행 이후 가입한 가입자라도 불완전판매 소지가 없는 건 아니다. 피해자 중에선 "기계가 읽어주는 질문에 '예'라고만 답하면 된다"거나 "형광펜으로 표시한 부분에 모두 사인하면 된다"는 말을 듣고 그대로 따랐다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투자 성향 분석에서 '안정형'이 나와 ELS 투자를 할 수 없었지만, 재분석을 통해 '공격형'이 나오도록 은행원으로부터 '조언'을 받았다는 사례도 다수다.
은행권은 표준판매절차에 의거해 상품을 판매해온 만큼 불완전판매 소지가 거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계약서상 손실 가능성 등이 명기돼 있고, 가입상품 위험 등급과 원금 손실 가능성 이해 여부를 자필 또는 녹취로 고객에게 직접 확인했다는 것이다. 다만 고객이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불완전판매를 주장할 경우 증명 의무가 금융사에 있어 추후 분쟁은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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