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야기현 다섯 번째 올레길 '무라타코스'
폐허에도 꽃은 핀다.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은 시련에 이골이 난 곳이다. 12년 전인 2011년 '동일본대지진'의 쓰나미가 덮쳤던 이곳은 성난 파도가 모든 것을 집어삼킨 재앙의 한가운데였다. 미야기현(宮城県)에서만 사망자가 1만 명이 넘었고, 행방불명자 1,214명은 지금도 수색 중이다. 역사적으로 내내 변방으로 차별받았고, 인근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최근까지 오염수 방출 문제로 세계의 따가운 시선이 쏠리는 곳이다. 그럼에도 삶은 이어져야 했다.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해외 자매의 길로 2018년 미야기올레를 시작한 것도 이 점에 연유한다. 대재해 이후 자연이 스스로 치유해가는 과정을 경험한 미야기현 사람들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는 올레길의 힘을 믿고 2016년 제주올레에 문을 두드렸다. 안은주 제주올레 대표는 "여러 우려가 있었지만 이사회가 미야기올레를 최종 결정한 이유는 아픔과 상처가 있는 곳에 길을 내어 서로 치유하고 상생하는 것이 올레가 추구하는 가치라 여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야기올레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4개 코스가 열렸고, 코로나19로 중단되었다가 지난 11일 다섯 번째 올레길인 '무라타코스'가 개장했다. 현재까지 누적 완주자 5만 명을 기록했고, 앞으로 3개 코스를 더 개발할 계획이다.
'치유와 회복, 상생'의 올레길, 미야기에 열리다
"이미 다른 4개 미야기올레는 모두 걸어봤어요. 새로 개장하는 길을 첫날 걷기 위해 아침부터 왔죠."
11일 미야기현 무라타 시오나이공원에서 열린 '무라타코스 개장식'에서 만난 나가누마 히로요시(68)씨는 설렘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인근 센다이시에서 차량으로 40분 정도 걸려 이곳에 온 그는, 올레만이 가진 매력을 '등산과는 달리 주변을 살펴보며 내 속도로 걸을 수 있는 것'이라 꼽았다. 3년 만에 새 코스가 생겼다는 소식에 무라타에는 900여 명의 내외국인 올레꾼이 모였고 현지 매체의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전체 13.5㎞ 길이의 무라타코스는 4, 5시간 정도 소요되는 중급 난이도의 올레길이다. 시작점에서 다시 종점으로 돌아오는 원형코스로, 바다 같은 웅장한 경치는 없지만 에도시대 상업으로 번성한 역사적인 점포와 평범한 시민의 삶이 곳곳에 녹아 있어 인정을 느낄 수 있다. 시작점인 미치노에키 무라타에는 왕벚나무 수백 그루가 자라고 있어 봄에 특히 아름답다고 한다.
개장 첫날 '무라타코스' 걸어봤더니
길을 표시하는 조랑말 모양 '간세'와 방향을 알려주는 청색과 다홍색 리본이 영락없이 '제주올레'의 자매길임을 알려준다. 초반 개울이 가로지르는 작은 마을을 지나 얕은 오르막길을 오르면 울창한 대나무숲과 침엽수림이 이어진다. 대체로 완만한 길을 1시간 30분쯤 걸었을까. 얕은 언덕을 오르다 뒤를 돌아보니 웅대한 자오연봉(蔵王連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절경을 이룬다.
결코 짧지 않은 코스는 사람 냄새를 흠뻑 머금고 있다. 지역주민이 기도를 드리는 불상과 절, 전통 민가 등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고, 코스 중반 우바가후토코로 지구에는 메밀국수 식당이 여럿 영업한다. 말미에는 국가중요문화재로 선정된 상인의 저택과 창고 등 에도시대 건축 디자인과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작은 마을로 발길이 가닿는다. 그 푸근한 정취에 '큰길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이라는 제주 방언 '올레'의 뜻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
애도와 기억도 여행이 될 수 있다면
대지진 후 12년이 지났지만 이곳의 추모는 현재진행형이다. 당시 참상을 기억하고 애도하기 위한 공간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당시 1,109명이 사망한 히가시마츠시마의 노비루 구역사가 대표적이다. 한때 기차가 다닌 선로는 'ㄱ자' 모양으로 휘었고, 선로 너머 평지에는 피해자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이름이 새겨진 대지진 부흥기념비가 있다. 현재 '동일본대지진부흥기념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노비루 구역사 벽면에는 3.7m 높이에 선이 그어져 있는데, 지진 당시 침수됐던 지점을 표시한 것이다.
JR시즈가와역 근처 '미나미산리쿠311기념관'은 주민들의 증언과 사진, 영상 등 지진 재해 자료를 수집하고 기록을 보존하는 공간이다. 지난해 개관 이래 16만 명의 관광객이 찾았다. 삶의 모든 것을 상실하는 극한의 상황을 경험한 지역 주민들이 어떻게 터전을 재생했는지, 그 기억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정비한 시설이다. 주변에는 메모리얼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주민들에게 피난을 호소하는 방송을 했던 방재대책청사의 잔해도 철거되지 않고 남아 있다. 2013년 '지진재해유적'으로 지정되었고, 해체 여론도 적지 않았으나 지역 사회는 보존을 결정했다. 유적 맞은편 안내판에는 쓰나미 당시 사진과 함께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잊지 않기 위해서. 그리하여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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