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무슬림 이민자" 미확인 루머 확산에
'이민자 혐오' 대규모 시위... 약탈·방화까지
경찰청장 "극우 미치광이 세력이 폭동 배후"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의 초등학교 주변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이 '반(反)이민' 폭력 시위로 번졌다. 용의자가 '알제리 출신 이민자'라는 미확인 소문이 소셜미디어를 타고 확산한 탓이다. 당국은 "혼란을 부추기려는 극우 세력이 배후에 있다"고 밝혔다.
23일(현지시간) 아일랜드 공영 RTE방송과 아이리시타임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30분쯤 더블린의 한 초등학교를 나오던 5, 6세 어린이와 30대 여성 1명이 신원 미상의 남성으로부터 흉기 공격을 받았다. 이로 인해 5세 여아와 성인 여성은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다른 2명은 경미한 부상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용의자는 40대 후반 또는 50대 초반인 것으로 전해졌다. 주변 시민들에 의해 제압된 그는 경찰에 체포됐으나, 역시 크게 다친 상태다. 경찰은 일단 테러와는 무관한 단독 범행으로 보고, 정확한 동기를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범인의 국적 등 구체적인 신상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BBC는 "20년간 아일랜드에 거주한 아일랜드 시민"이라고만 전했다.
그러나 사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오후 3시쯤부터 사건 현장에 모여든 군중이 반이민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범인은 알제리 출신 무슬림 이민자'라는 루머가 소셜미디어에 퍼진 결과였다. "이민자를 발견하면 모두 죽여라" "우리는 대량 추방을 원한다" "대량 이주에 대한 아일랜드인의 인내심은 끝났다" 등 극단적인 선동 게시글도 잇따랐다. 현지 매체 '더저널'의 에이미어 맥콜리 기자는 "거리에서 폭동을 실시간 생중계하며 (분노를) 부추기는 사람들을 봤다"고 RTE에 말했다. 시위 진압을 위해 군대가 투입됐다는 가짜뉴스까지 등장했다.
날이 저문 이후에도 격화한 시위는 결국 더블린 도심까지 번졌다. 400명 이상 동원된 경찰과 물리적 충돌도 벌였다. 일부 시위대는 이민 신청자들이 머무는 호텔 앞으로 몰려가 불을 질렀다. 백화점을 습격하는가 하면, 상점 유리창을 깨부수거나 물건을 약탈하기도 했다. 경찰차와 버스, 승용차 여러 대가 불탔고, 출동 중인 소방차마저 공격을 받았다. 시내 대중교통과 트램도 멈춰 섰다. 폭력 시위는 자정이 돼서야 잦아들었다고 BBC는 전했다.
이번 폭동은 극우 세력이 사주한 결과라는 게 수사당국의 판단이다. 드루 해리스 아일랜드 경찰청장은 "악의적 목적의 유언비어가 퍼지고 있다"며 "극우 이데올로기의 미치광이 훌리건 세력이 (시위대의) 뒤에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아일랜드도 경제난 속에 이민자가 대거 유입되면서, 반이민 정서를 등에 업은 극우 세력이 급속히 세를 불리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아일랜드가 1년간 받은 이민자는 14만1,600명이다. 2007년 4월 이후 16년 만의 최다 기록이다. 아일랜드 전체 인구는 약 530만 명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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