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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소설로서 들려주는 이야기 [제56회 한국일보문학상 천운영]

입력
2023.11.23 04: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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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심 심사경위]

이달 10일 제56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 심사를 위해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를 찾은 정홍수(왼쪽부터) 은희경 편혜영 양경언 전성태 신용목 강동호 심사위원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예원 인턴기자

이달 10일 제56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 심사를 위해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를 찾은 정홍수(왼쪽부터) 은희경 편혜영 양경언 전성태 신용목 강동호 심사위원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예원 인턴기자

다양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등으로 '보고' '듣는' 문화가 성행하는 시대. 소설의 자리는 어디일까. 무수한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소설은 독자들과 어떻게 만나고 있으며 우리는 그로부터 무엇을 건네받을까.

심사위원들의 손끝에 본심 후보작들이 차례로 닿을 때마다 심사장 내 열기를 북돋은 화두는 '소설이 소설로서 들려주는 이야기'였다. 심사위원들이 새로운 감각으로 화법을 갱신함으로써 소설에 드나드는 문을 다르게 조각하는 작품을 붙들었던 한편, 소설이 계속해서 읽히고 쓰이는 근원이 무엇인지를 건드리는 작품에 줄곧 마음이 기울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약이나 축약, 1.25배속으로 재생 속도 조절이 불가능한 우리 삶의 장면을 신실한 언어로 끌어안는 작품에 오래 머무를 때만 얻는 소설적 감동에 관한 얘기가 길게 다뤄졌다. 본심에서는 특히 두 작품이 좀처럼 심사를 끝맺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나의 거대한 창작론으로 읽히는 '중급 한국어'(문지혁 지음)는 인간의 삶이 어떻게 소설이 되어가는지를 목차화하는 가운데 그사이에 끼어드는 진짜 삶의 얼굴을 마주하는 작품이다. 한 사람의 세계가 탄생하고 자라는 과정과 그것을 귀하게 받아들이면서부터 시작되고 이어지는 소설의 창작 과정이 나란히 걸어가는 풍경이 따뜻했다. '중급 한국어'는 삶이 소설이 되는 순간을 호시탐탐 노리기보다 소설은 언제나 삶의 한가운데서 쓰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자리가 소설을 소설답게 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삶보다 우선인 소설은 없으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만 평범함을 특별하게 대할 줄 아는 태도, 즉 삶을 향한 순정임을 겸허히 이해해야 한다는 작품의 메시지가 미덥다.

지난 1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올해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에 오른 10개 작품에 대해 심사위원들이 치열하게 논의하고 있다. 김예원 인턴기자

지난 1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올해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에 오른 10개 작품에 대해 심사위원들이 치열하게 논의하고 있다. 김예원 인턴기자

천운영의 '반에 반의 반'은 한 사람의 삶이 다음 사람의 삶으로 이어질 때 생래적으로 품고 있는 이야기'로부터 소설을 저절로 일으킬 줄 아는 작품이다. 요컨대 작가는 '소설이 소설로서 들려주는 이야기'란 무엇인지 그 고민을 할머니 세대로부터 엄마 세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생애에 들이닥치는 의문과 그에 대한 다양한 응답을 탐구함으로써 풀어간다. '반에 반의 반'은 소설이 언제나 삶의 한가운데서 쓰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국면마다 박혀있는 문학적 순간이 우리를 계속 살게 한다는 비밀을 공유해준다. 살아가는 일 자체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가 새어 나오는 자리야말로 소설이 소설다운 특별함을 갖추는 곳임을 노련하게 일깨워주는 작품에 독자의 마음이 기울지 않기란 쉽지 않다.

문학상이 가려낼 '문학적 역량'이란 어쩌면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에 충실할 수 있도록, 저 자신의 위엄을 저버리지 않도록 이끄는 힘을 작품이 보유했는지 그 여부인지도 모른다. 최종 선택을 위해 각각의 작품이 지닌 아쉬운 점보다 미덕에 대해 더 나누면서 심사위원들이 도달한 결론이 우리 시대 소설이 품은 고민의 깊이를 더하는 데 닿았으리라 믿는다.

심사위원 일동 (대표집필 양경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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