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96세로 타계… NYT “거의 공동 대통령”
내각회의 자주 참석… 정신건강 문제에 전념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은 남편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현직 시절 정치적 존재감이 압도적인 영부인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의해 좌절되기는 했지만, 미국 대통령 자리에 도전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힐러리 전에 로잘린이 있었다. 남편 지미 카터(99) 전 미국 대통령만큼 대통령 같던 영부인 로잘린 여사가 19일(현지시간) 향년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비영리 자선재단인 미국 카터센터는 이날 오후 2시 10분 로잘린 여사가 고향인 조지아주(州) 플레인스 자택에서 타계했다고 밝혔다. 센터는 성명에서 “정신건강, 간병, 여성 권리의 열정적 옹호자였던 로잘린 전 영부인이 가족 곁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빌과 힐러리 클린턴이 자신들을 국가에 ‘패키지 딜’(일괄 거래)로 내놓기 16년 전에 이미 로잘린과 지미 카터는 거의 공동 대통령으로 일했다”고 논평했다.
고인의 별세 소식은 17일 센터가 성명을 통해 그가 자택에서 ‘호스피스 케어’를 받고 있다고 발표한 지 이틀 만에 전해졌다. 호스피스 케어는 치료하기 힘든 질병을 앓는 사람에게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편안히 보내도록 보살핌과 치료를 제공하는 활동이다. 피부암에 걸린 카터 전 대통령도 2월부터 자택에서 호스피스 케어를 받고 있다.
고인은 1927년 8월 18일 카터 전 대통령과 같은 조지아주 작은 마을 플레인스에서 태어났다. AP통신에 따르면 둘의 부모는 이웃 친구였고, 간호사였던 카터 전 대통령 어머니가 친구의 로잘린 출산을 도왔다. 로잘린의 출생 며칠 후 당시 3세였던 ‘어린이 카터’가 모친과 함께 산모를 방문했고, 이때가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로잘린 여사는 카터 전 대통령의 평생 동반자였다. 대통령 재임(1977~1981년) 당시 정치적 활동은 물론 퇴임 뒤 인도주의 활동까지 삶의 전 과정을 함께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로잘린은 내가 이룬 모든 것에서 동등한 파트너였다”고 밝혔다. 로잘린 여사도 과거 인터뷰릍 통해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는 친구이자 연인일 뿐 아니라 파트너가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치적으로 가장 적극적인 퍼스트레이디 중 한 명이 로잘린 여사였다. 백악관에 따르면 고인은 내각 회의 및 대통령 대상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일일 브리핑을 비롯한 주요 브리핑에 참석했고, 행사에서 자주 대통령을 대신했으며, 대통령 특사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방문하기도 했다. 정책 문제에 대한 조언도 거침없었다고 한다.
고인의 특별한 관심사는 미국인의 정신건강이었다. 1977, 1978년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위원회의 명예위원장을 맡았고, 남편의 대통령 임기 종료 직후인 1982년에는 카터재단을 함께 설립해 정신건강, 돌봄, 유아 면역력 강화, 인권, 분쟁 해결 등 이슈에 집중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고인은 의회가 정신건강 법안을 통과시키도록 압력을 가했고, 백악관 시절뿐 아니라 이후 40여 년간 정신질환자가 더 나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힘껏 싸웠다”고 전했다.
공교롭게 고인도 생애 막바지 치매를 앓았다. 카터재단은 5월 이 사실을 공개하고, 고인이 자택에서 호스피스 케어를 받는 남편과 계속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생애 막바지 치매… 미국 최장기 퍼스트 커플
로잘린과 지미 카터 부부는 최장기 ‘퍼스트 커플’이다. 두 사람은 올 7월 7일 결혼 77주년을 축하했다. 이는 ‘아버지 부시’인 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바버라 부시 여사의 부부 생활 기간(73년)을 넘어선 역대 미국 대통령 부부 최장 기록이다.
카터 전 대통령 당선에는 고인의 기여가 결정적이었다는 게 미국 언론 평가다. 어릴 적부터 세 살 차이 친구였던 둘은 1945년 해군사관학교 생도였던 청년 카터가 잠시 집에 돌아왔을 때 데이트를 시작했고, 이듬해 결혼했다. 1953년 카터가 부친 별세로 가족의 땅콩 농장을 물려받자, 플레인스에서 남편과 함께 사업을 하던 로잘린은 1962년 카터의 조지아주 상원의원 출마 당시 선거 캠프에서 활동하며 그의 당선을 도왔다. 1970년 남편의 조지아 주지사 당선에도 이바지했다. 1976년 대선 때는 카터 전 대통령과 따로 미국을 돌아다니며 지지를 호소했는데, 고인의 조용하고 친절한 성품에 사람들이 호감을 느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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