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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 늘어난 일본 현대미술전… '기괴한 가와이(かわいい)'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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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 늘어난 일본 현대미술전… '기괴한 가와이(かわいい)' 통했다

입력
2023.11.20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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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치 히라코, 무라카미 다카시, 여성작가 7인전 등
익숙한 캐릭터·화풍, 전통사상 등… "다양성 확대"

유이치 히라코. Green Master 84, 2023. 스페이스K 제공

유이치 히라코. Green Master 84, 2023. 스페이스K 제공

몸통과 팔, 다리는 사람 형상이다. 그런데 얼굴이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나무다. 여기에 사슴뿔을 얹었다. 고양이를 안고 있으며, 배경은 온통 식물을 담은 화분이다. 기괴하다.

하지만 귀여운 면도 있다. 나무, 사슴뿔, 식물 등의 이미지가 만화 캐릭터처럼 부드럽게 표현됐다. 초록, 노랑, 빨강 등 주로 원색을 어둡게 썼다. 혼종만 아니라면, 크리스마스 카드 그림이 연상되는 이미지와 색감이다.

일본 현대미술 작가 유이치 히라코(41)의 회화 ‘그린 마스터 84’의 모습이다. 유이치는 14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스페이스K에서 개막한 국내 첫 개인전 ‘여행’에서 이 작품을 비롯한 회화, 조각, 설치 30여 점을 선보였다.

유이치 히라코, Wooden Wood 49, 2023. 스페이스K 제공

유이치 히라코, Wooden Wood 49, 2023. 스페이스K 제공

'트리맨'으로 불리는 캐릭터를 작가는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했다. 3m 높이의 나무 조각에 원색을 칠해 입체화하고, 주변에 씨앗과 열매 등을 상징하는 나무 조각과 함께 설치 작품을 만들었다. 해 질 녘이면 황금색으로 빛나는 청동상도 미술관 앞 잔디밭에 세운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가로 10m, 높이 3m의 대형작 '트래블링 플랜츠(Traveling Plants)'가 걸렸다. 네 개 화면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도 '트리맨'이 등장한다. 왼쪽 첫 화면은 트리맨이 색색의 원형 식물들과 함께 여행을 시작하는 듯한 모습이다. 붉은 숲, 푸른 산, 주황빛 하늘로 삼분한 두 번째 화면은 이들의 여정에서 본 전경을 표현한 듯하다. 나무 그루터기 위에 앉아 잠시 쉬는 듯한 트리맨의 모습은 작가 자신 또는 여행의 동반자가 될 관람객을 나타낸 듯 보인다. 나무 위에 걸터앉은 찌르레기는 여행을 돕는 동반자를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시는 다음 달 4일까지.

유이치 히라코, Traveling Plants, 2023. 스페이스K 제공

유이치 히라코, Traveling Plants, 2023. 스페이스K 제공

최근 독특하면서도 귀여운 ‘기괴한 가와이(かわいい·귀엽다)' 풍의 이 같은 일본 현대미술 전시가 잇따르고 있다. 소수의 관심사였던 '오타쿠' 문화, 그중에서도 귀엽고 앙증맞은 일본의 '가와이' 정서가 한국에서도 통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1990년대를 정점으로 국내에서도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일본 애니메이션의 감성이 한국 미술시장에서 파괴력을 나타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전조는 더 있었다. 앞서 부산시립미술관은 지난 1월부터 열린 무라카미 다카시(61)의 개인전 '무라카미좀비'전이 인기를 끌자 전시 기간을 한 달 연장(4월 16일까지)했다. 이 전시의 누적 관람객은 16만여 명으로 미술관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 미술관의 10개 안팎인 연중 프로그램을 모두 합친 통상 연간 관람객이 35만 명에서 최대 49만 명 수준이다.

무라카미는 애니메이션 화풍으로 식물과 사람 얼굴을 합성한 꽃 캐릭터 등 네오 팝아트로 유명한 작가다. 하위문화로 간주되던 애니메이션을 순수예술에 끌어와 한때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상위문화든 하위문화든 예술 안에서 섞이면 경계 없이 평평해진다는 '슈퍼플랫'을 주창하며, 일본 대중문화를 고급문화의 반열에 올렸다. 작품 표현 방식에도 일본 전통화와 같은 2차원적 평면성을 담아냈다. 도라에몽과 미키마우스를 합친 이미지인 '미스터 도브(DOB)'가 대표적이다. 국내 근대미술 회화에서도 평면적 표현이 특징인 경우가 많아, 한국 관람객도 대부분 이에 익숙하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대표작 중 하나인 '꽃'의 이미지로 가득 채운 부산시립미술관 전시실의 지난 2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무라카미 다카시의 대표작 중 하나인 '꽃'의 이미지로 가득 채운 부산시립미술관 전시실의 지난 2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 작품은 식물을 의인화했다는 점에서 일본의 '만신사상'에 기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생명과 자연은 물론 사물에도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 또한 산신, 용왕, 천지신명을 믿는 한국 전통사상과 유사점이 있다. ‘트리맨’을 만들어 낸 유이치의 예술세계에 담긴 사상도 이와 같다. ‘트리맨’과 ‘꽃’은 자연물에 생명력을 부여해 ‘이들이 사람처럼 움직이면 과연 함부로 대할 수 있겠는가’라고 묻는 듯하다. 유이치가 도심에 배출하는 배설물 때문에 일본에서 골칫거리로 인식되는 찌르레기를 선하게 묘사한 것도 같은 이유다.

보편적 가치를 현대미술을 통해 친숙한 방법으로 설득하는 것도 이들의 특징이다.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14일 시작한 일본 여성 작가 7인전 '보디, 러브, 젠더(Body, Love, Gender)’에도 자연의 생명력을 공감각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나왔다.

모리 유코, Decomposition, 2022. 가나아트센터 제공

모리 유코, Decomposition, 2022. 가나아트센터 제공

내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일본관 작가로 선정된 모리 유코(43)가 실제 과일을 이용해 만든 설치작 '디콤포지션(Decomposition)'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바나나, 파인애플 등에 전극을 삽입해 건조하고 부패하는 과정에서 수분이 줄어들며 생기는 저항력을 소리로 변환하고, 이를 스피커로 들려준다. 자연의 생명력을 공감각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자연주의를 호소하는 듯하다. 이를 포함해 신체와 감정, 젠더를 주제로 한 작품 100여 점이 출품됐다. 다음 달 10일까지.

잇따르는 일본 현대미술전을 놓고 정종효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한국의 미술 애호가, 미술품 수집가 층이 폭넓어지면서 (미술시장의) 다양성이 확대된 결과로 보인다"며 "'프리즈 서울' 등을 통해 다양한 해외 작품을 접할 기회가 많아진 데다 최근 한일 관계 개선의 영향도 없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김청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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