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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의 밤 수놓을 바흐·헨델… 누가 더 성악가에 관대할까

입력
2023.11.20 10: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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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고음악 거장인 지휘자 윌리엄 크리스티가 이끄는 프랑스 바로크 음악 연주단체 레자르 플로리상이 바흐의 '요한수난곡' 내한 연주회를 갖는다. 아트센터인천 제공

고음악 거장인 지휘자 윌리엄 크리스티가 이끄는 프랑스 바로크 음악 연주단체 레자르 플로리상이 바흐의 '요한수난곡' 내한 연주회를 갖는다. 아트센터인천 제공

연말에는 바흐와 헨델의 작품이 살갑게 다가온다. 음악의 아버지, 어머니라는 귀여운 애칭을 갖고 있을 만큼 두 사람은 서양음악의 축을 구성하는 절대적 인물이었다. 같은 해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성격이나 활동 방식, 몰두하는 분야가 전혀 달라 서로를 평생 보지 못한 채 각자의 위치에서 다작했다. 바흐는 다복한 가정을 꾸리고 성실하게 살았지만 사후에도 오랫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월급쟁이였다. 독일인으로 태어나 영국인으로 살았던 헨델은 평생 혼자 살면서 자신이 만든 곡으로 큰돈을 벌었고, 영국 지식인들의 존경과 총애를 받으며 죽을 때까지 명예로운 삶을 살다 간 인물이었다.

그런데 콘서트홀에서 보면 바흐의 작품이 절대적으로 많다. 건반 음악부터 독주 악기를 위한 모음곡, 실내악곡, 협주곡, 수난곡, 수백 곡에 이르는 칸타타까지 다양하다. 헨델 역시 오르간 협주곡, 쳄발로 모음곡, 플루트·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수상음악을 비롯해 수많은 오페라와 오라토리오를 남겼지만 헨델의 대표작은 이구동성 오라토리오 '메시아'만 꼽을 것이다. 작품 수도 바흐에 비하면 적은데 헨델은 왜 항상 바흐와 동등한 위치에서 소개될까.

발타자르 데너가 그린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의 초상화. 위키미디어 커먼스

발타자르 데너가 그린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의 초상화. 위키미디어 커먼스

헨델의 음악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성악, 특히 오페라다. 헨델은 오페라 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영국 왕립 음악 아카데미의 공식 작곡가로서 한 달 만에 한 편씩 오페라를 써냈던 왕성한 창작자였고 직접 이야기를 쓰는 타고난 극작가였으며 성악가 섭외까지 총괄한 음악감독이었다. 바그너 정도면 모를까, 이 모든 역할을 감당할 만한 인물은 요즘도 찾기 어려울 듯하다.

독일을 떠나본 적 없는 바흐와 달리, 헨델은 일찌감치 종교음악의 성지인 로마로 떠나 명곡인 '주께서 말씀하시기를'(Dixit Dominus)을 비롯한 종교음악을 썼고, 피렌체의 메디치 공작을 찾아가 오페라 '로드리고'를 선보였다. 오페라는 바로크 시대를 상징하는 인기 콘텐츠였다. 헨델은 상인들의 도시이자 문화의 허브였던 베네치아에서 알려진 후 영국 앤 여왕의 환대를 받으며 런던에 입성,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로 유명한 오페라 '리날도'로 큰 성공을 거둔다. 곧이어 가장 중요한 오페라인 '줄리오 체자레', '타메를라노', '로델린다'를 내놓는다. 당시에는 청중이 음악에 흥미를 못 느껴 자리를 뜨게 되면 공연을 그만둬야 했는데 '로델린다'는 그 시즌에만 14회 공연을 가질 정도로 인기 작품이었다.

그런데 헨델을 비롯해 바로크 오페라는 대부분 수세기 동안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 낭만 오페라와는 달리 작품의 주인공은 당대 인기스타였던 거세 가수 카스트라토였고, 귀족이나 왕을 찬미하거나 그들의 위용을 높이는 영웅 이야기가 많았다. 인기작이었던 '로델린다'조차 1736년을 끝으로 오랜 침묵의 시간이 있었는데, 다행히 1920년 독일 괴팅엔 헨델 페스티벌에서 소환된 이후 지금은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다.

이렇듯 헨델의 오페라들이 무대에 오르지 않았으니 그의 음악 세계를 잘 모를 수밖에 없었지만 그가 남긴 오페라 아리아를 모아놓은 앨범을 들어보면 얼마나 아름다운 작품이 많은지 깜짝 놀라게 된다. 성부에 따른 음정 배치와 선율의 진행은 물론 프레이징을 이어가는 패턴이 사람의 호흡과 발음, 발성이 자연스럽게 발산되도록 만들면서 감정적으로 충분히 빠져들게 만든다. 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 숄은 헨델의 위대함은 성악가들이 제일 잘 안다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로 바흐를 꼽지만 그때마다 헨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헨델은 바흐만큼 뛰어난 작곡가이고 무엇보다 그의 오페라들은 환상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성악가들이 같은 생각일 텐데, 바흐보다는 헨델의 곡을 부르기가 훨씬 더 편하다. 헨델은 사람의 목소리를 어느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 사람이었다."

프랑스 바로크 음악 연주단체 레자르 플로리상이 바흐의 '요한수난곡' 내한 연주회를 갖는다. 아트센터인천 제공

프랑스 바로크 음악 연주단체 레자르 플로리상이 바흐의 '요한수난곡' 내한 연주회를 갖는다. 아트센터인천 제공

올 연말, 바흐와 헨델의 중요한 작품들이 무대에 오른다. 레자르 플로리상이 내한해 바흐의 '요한수난곡'을, 모테트 합창단이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노래한다. 앞서 언급한 헨델의 오페라 '로델린다'는 이 작품의 최고 해석가인 잉글리시 콘서트가 내한해 한국에서 첫선을 보이고, 오라토리오 '메시아'는 올해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지금까지는 관객의 입장에서만 음악을 들었다면, 무대에 선 성악가 입장에서 감상해 보면 어떨까. 음의 진행은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들숨과 날숨을 따라 같이 호흡하며 보다 적극적으로 작품에 몰입해 보는 것이다. 성악가에게 관대한 것은 단연코 헨델이다. 언어와 맞물려 쉼과 감정의 흐름을 따라 선율을 흥얼거리다 보면 이 작곡가와 더 친숙해질 수밖에 없다. 바흐의 작품을 잘 부르기 위해서는 시련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만큼 훌륭하게 노래했을 때에는 또 다른 희열이 있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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