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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와 온실가스

입력
2023.11.19 22: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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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코펜하겐 인어공주 동상

덴마크 코펜하겐 인어공주 동상

덴마크에 학회차 다녀왔다. 듣던 것처럼 공기는 맑고 날씨는 싸늘했다. 바람이 많이 부는 코펜하겐 해변에는 조촐한 관광명소가 있다. 길이가 80㎝ 정도 되는 인어공주 동상이다. 그에 비하면 강원 춘천 소양강에 있는 소양강 처녀상은 매우 웅장하게 느껴졌다. 덴마크의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1837년에 출판한 동화 '인어공주'는 전 세계인이 다 아는 유명한 이야기다. 바다에 살던 인어공주가 인간 세상의 왕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낸다. 인어공주는 폭풍을 만나 위험에 처한 왕자를 구하게 된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나머지 본인도 인간이 되기 위해 마녀와 거래를 한다. 마녀의 조건은 정해진 기일에 왕자와 결혼을 하면 완전한 인간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인어공주는 죽어 물거품으로 변한다는 것.

인어공주는 무리한 욕망에 이끌린 무자격 불법 미용 성형 시술의 가련한 피해자다. 이렇다 할 재산이 없어 악덕업자에게 혀를 내주고 아름다운 말과 노래를 빼앗겼다.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어둠의 약물을 통해 꼬리를 다리로 변형시켰다. 바닷속에서 헤엄치던 존재가 중력을 거슬러 다리로 직립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걸핏하면 넘어졌고 골반과 하지의 통증으로 인간으로 사는 내내 괴로움을 느꼈다. 설상가상으로 영원한 사랑인 줄로만 알았던 왕자는 더 젊고 예쁘고 돈 많고 신분이 확실한 이웃 나라의 공주에게 마음을 빼앗겨 배신을 했다.

이야기의 후반부는 디즈니의 만화와 원작이 다르다. 만화에서는 행복한 재결합이라는 극적인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안데르센은 그렇게 쓰지 않았다. 원작에서 인어공주는 배신한 왕자를 죽이고 그 피를 다리에 묻히면 다시 인어가 될 수 있다는 엽기적인 살해 종용을 받았다. 실제로 첫날밤의 현장에 칼을 들고 잠입한다. 칼을 쥔 떨리는 손으로 왕자를 바라볼 때, 이 한심한 왕자는 자면서도 옆에 누워있는 이웃 나라 공주의 이름을 부른다. 나는 이 장면에서 인어공주가 살인을 실행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하지만 심성이 착한 인어공주는 아무도 죽이지 못하고 깊은 슬픔에 빠져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여기서 반전이 있는데, 죽어 물보라가 되는 줄로만 알았던 인어공주는 정상이 참작돼 '공기의 요정'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부여된 임무는 뜨거운 공기를 남쪽으로 보내는 일이다. 천국으로 갈 수 있는 평가 기간은 무려 300년이다. 그토록 꿈꾸던 '영원한 영혼'을 가질 수 있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인어공주를 공기의 요정으로 부활시킨 안데르센은 선각자였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19세기의 유럽을 살았던 그는 이미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를 예견했음이 분명하다. 코펜하겐 연안에는 힘차게 돌아가는 해상풍력발전기가 많이 보인다. 덴마크는 해상풍력 발전 분야의 세계적인 선두주자로, 국가 전체 전력의 60% 이상을 이것으로 공급받는다고 한다. 북해와 발트해에 위치하고 있어 풍력자원이 풍부하다고는 하지만, '인어공주'를 읽고 나니 덥고 나쁜 공기를 남쪽으로 보내는 임무를 부여받은 공기의 요정들이 애를 써서 터빈을 돌리고 있는 상상을 하게 된다.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온난화로, 요정이 돼서도 인간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인어공주를 걱정하게 된다. 부디 온실가스가 없는 천국으로 가서 영원한 영혼을 가지기를 기원해본다.


오흥권 분당서울대병원 대장암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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