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외압 없었다더니…국방장관 보좌관, 해병대에 "수사의뢰 말고 징계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외압 없었다더니…국방장관 보좌관, 해병대에 "수사의뢰 말고 징계로"

입력
2023.11.17 14:18
0 0

국방장관 보좌관-해병대 사령관
주고받은 메시지, 법원에 제출돼
보좌관 '책임자는 수사의뢰 말라'
국방부 "개인 SNS... 의도 몰라"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 등 혐의를 받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지난 9월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군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 등 혐의를 받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지난 9월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군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방부 장관의 군사보좌관이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던 해병대에 ‘지휘책임자는 수사의뢰를 하지 말라’는 취지의 요구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동안 '(수사의뢰 대상에) 누구는 넣고 누구는 빼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는 국방부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또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항명이라고 주장해온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사건 초기에는 '수사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던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징계만" 요청?

박 대령의 '항명 사태' 직전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의 군사보좌관이던 박진희 육군 준장(현 소장)과 김 사령관이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가 최근 중앙군사법원에 제출됐다. 이에 따르면 박진희 군사보좌관은 지난 8월 1일 낮 김 사령관에게 "확실한 혐의자는 수사 의뢰, 지휘책임 관련 인원은 징계로 하는 것도 검토해주십시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박 보좌관이 언급한 '지휘책임 관련 인원'은 사단장 등 상급자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날은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명시해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박 대령의 보고에 이 장관이 서명(7월 30일)한 후 이틀이 지난 시점이었다.

박진희 국방부 장관 군사보좌관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8월 1일 텔레그램으로 주고받은 메시지를 재구성한 것. 연합뉴스

박진희 국방부 장관 군사보좌관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8월 1일 텔레그램으로 주고받은 메시지를 재구성한 것. 연합뉴스

김 사령관은 박 보좌관의 요구를 사실상 거절했다. 그는 "지금 단계에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징계는) 나중에 피의자 신분이 안 됐을 때 논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경찰 조사 이후입니다"라고 답했다.

박 보좌관이 김 사령관에게 이 같은 요구를 한 것은 박 대령이 유재은 법무관리관의 요청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박 보좌관이 이 메시지를 보내기 2시간 전 유 법무관리관은 박 대령에게 전화했다. 통화 내용에 대해 박 대령은 '당시 법무관리관이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혐의자 적시 범위를) 한정해야 한다고 했다. 외압으로 느꼈다'고 언론에 폭로한 바 있다.

박 보좌관은 두 사람의 통화 내용을 알고 있다는 듯 김 사령관에게 "수사단장(박정훈 대령)은 법무관리관 개입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고 말했다. 법무관리관의 말이 수사단장에게 먹히지 않자 장관 최측근인 군사보좌관이 해병대 사령관에게 메시지를 보내 재차 압박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지난 9월 22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75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 미디어데이에서 준비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지난 9월 22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75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 미디어데이에서 준비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군대에서 하급자인 박 보좌관(1성)이 김 사령관(3성)에게 장관 결재를 뒤엎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낸 것 역시 실질적으로는 '윗선의 지시'로 여겨진다는 게 군 안팎의 지적이다. 메시지를 보냈을 당시 박 보좌관은 이 장관의 우즈베키스탄 출장에 동행해 24시간 밀착 수행 중이었다. 그러나 박 보좌관은 연합뉴스에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을 사령관님에게 이야기한 것이고 장관님께서 말씀하신 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도 "박 보좌관의 개인적인 SNS를 통해 문답이 오고 간 것"이라며 "어떤 의도인지는 알 수 없다"고 해명했다.

박 보좌관은 수사 결과 경찰 이첩도 늦추려 했다. 그는 "내일(8월 2일) 오전 10시에 이첩할 계획"이라는 김 사령관에게 "(이 장관과 함께) 우즈벡에 있다. 빨라야 8월 10일 이후 이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보냈다. 박 대령은 김 사령관의 말대로 2일 오전 8명의 혐의가 적시된 수사 자료를 경북경찰청에 인계했다가 보직 해임된 후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박정훈 비난해온 사령관 "수사 문제없다"

박 대령의 외압·항명 논란이 불거지자 김 사령관은 박 단장이 자신의 지시를 위반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 사령관은 1일 박 보좌관과 대화할 당시까지만 해도 수사 결과에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폭넓게 조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김 사령관은 1일 오후 박 보좌관에게 "수사단 수사 결과를 어제와 오늘 다시 확인했는데 문제점 미식별"이라고 적었다.

같은 날 다른 메시지에서는 "경찰 수사에서 혐의자가 추가·제외될 수도 있는데"라며 "분명한 것은 최초 시작 단계에서 군 수사가 부실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공정한 수사만이 최소한의 예의라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최종 혐의자는 경찰 수사로 가려지는 만큼 군 수사 단계에서는 부실함 없이 제 식구 감싸기 등의 의혹을 최대한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의 국방부, 병무청 등에 대한 종합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의 국방부, 병무청 등에 대한 종합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앞서 김 사령관이 8월 2일 수사단의 중앙수사대장에게 전화해 "어차피 우리는 진실되게 했기 때문에 잘못한 건 없다"며 박 대령을 두둔한 녹취록도 공개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김 사령관은 국회에 출석해 '군 기강 문란 사건'이라며 박 대령을 비난했다.

최민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16일 논평을 내고 "사실상 임성근 사단장 등 해병대 1사단 지휘부를 과실치사 혐의에서 제외하라는 국방부 지침인 셈"이라며 "이것이 수사 외압이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비판했다.

남보라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