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콩고 파견·고용 직원들 현지서 성폭력
WHO, 피해자 104명에 250달러씩만 지급
"현지 물가 고려" 궤변... 최빈국에 또 상처
유엔 산하 세계보건기구(WHO)가 직원들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의 피해 여성들에게 배상금으로 고작 1인당 250달러(약 32만 원)만을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콩고 경제 사정을 고려해 책정한 금액"이라는 게 WHO의 항변이지만, '세계 최빈국' 피해자들의 상처를 한 번 더 후벼판 것이라는 비판이 무성하다. WHO의 '두 얼굴'이 재차 드러난 셈이다.
"끔찍한 일" 인정했지만... 부실한 피해자 지원
파문의 시작은 2021년 9월 WHO 독립조사위원회(조사위) 보고서 발표였다. 여기엔 '2018~2020년 에볼라 바이러스 대응 활동을 위해 민주콩고에 파견됐거나 현지에서 고용된 최소 21명의 WHO 직원이 일자리·금품 제공을 미끼로 현지 여성들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보고서는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줬다. 봉사와 보호의 책임이 있는 WHO의 추악한 이면이 폭로된 것이기 때문이다. 피해 여성 중엔 원치 않는 임신을 했거나, 임신중지(낙태)를 강요당한 이도 있었다. 심지어 13세 피해자까지 있었다. 당시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며 사죄했다. 이후 WHO는 피해자 지원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에게 지급된 배상금은 터무니없이 적었다. 14일(현지시간) WHO 내부 문건을 인용한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피해자 104명에게 각각 지급된 배상금은 250달러에 불과했다. WHO 현지 직원 일일 급여(144~480달러·약 19만~62만 원)의 중간 수준도 안 되는 금액만 찔끔 건네진 것이다. 배상금 총액은 2만6,000달러(약 3,387만 원)로, WHO가 조성한 피해자 지원 기금(약 26억 원)의 1%에 그쳤다.
게다가 배상금 수령을 위해 성폭력 피해자들은 WHO가 요구하는 '소득 창출 활동'에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했다. 피해자 오디아(24)는 "재봉과 제빵 과정을 이수한 뒤 250달러를 받을 수 있었다. 정말 부적절한 금액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성폭행의 결과로 낳은 다섯 살 딸을 키우고 있다. 일부 피해자는 WHO 성폭력 조사 책임자인 가야 감헤와게에게 "가해자들의 분명한 책임"을 요구했지만, 2021년 이후 해고된 직원은 5명뿐이다. 성폭력 가해 사실 인지 후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고위직 중 해고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현지 사정 고려한 금액"이라는 WHO… '빈국'의 비극
WHO는 '배상금 규모는 제반 상황에 맞춰 책정했다'고 설명했다. 민주콩고의 식량 가격이 낮은 점, 피해자들이 너무 많은 배상금을 받으면 지역사회에서 또 다른 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민주콩고 주민들은 하루 평균 2.15달러(약 2,798원) 미만의 돈으로 생활한다. 250달러는 4개월 생활비 정도다.
한마디로 '가난한 국가여서 적게 줄 수밖에 없다'는 논리인데, 궤변에 가깝다. 무엇보다 기금 대비 배상금(1%)이 지나치게 적다. WHO는 '직원 비용과 성폭력 예방 활동, 소송 관련 법적 지원 및 의료비 지원 등에도 기금이 쓰인다'는 입장이나, 나머지 99%의 대부분은 피해자와 무관한 용도에 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감헤와게 조사 책임자는 "충분한 조치를 취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피해자들에게 추가 지원 방안과 관련한 의견을 묻겠다"고 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