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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돌아온 '개그 콘서트'...차별·혐오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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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돌아온 '개그 콘서트'...차별·혐오 여전하다?

입력
2023.11.14 14:32
수정
2023.11.14 14:53
0 0

폐지 3년4개월 만에 부활한 '개그콘서트'
결혼이주여성 며느리에 "재수 없다" 비하
누리꾼 "일차원적 약자 혐오...시대 변해"
시민단체 "상처받지 않는 웃음이어야"

12일 방송된 KBS 개그콘서트 '니퉁의 인간극장'에서 시어머니는 결혼이주여성 며느리를 내내 구박하고, 며느리는 어눌한 한국어를 구사한다. 개그콘서트 유튜브 캡처

12일 방송된 KBS 개그콘서트 '니퉁의 인간극장'에서 시어머니는 결혼이주여성 며느리를 내내 구박하고, 며느리는 어눌한 한국어를 구사한다. 개그콘서트 유튜브 캡처

"우리 아들 돈 빨아먹으려고 아주. 나 때 결혼기념일은 별거 없었다. '왜 서방님이 밥상을 안 엎으시지' 하면 그게 결혼기념일이고 동네 축하받았다."

지난 12일 방송된 KBS 예능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개콘)의 한 코너 '니퉁의 인간극장'에서 시어머니(김영희)가 결혼이주여성 며느리 '니퉁'(김지영)에게 한 말이다. 시어머니는 시종일관 "니퉁인지 니 똥인지 내가 멸치 대가리 따라고 그랬는데 왜 여기서 노가리를 까고 앉았냐" "하여간 재수 없다"며 구박하고, 며느리는 내내 어눌하고 어색한 한국어를 구사한다.

"일차원적 약자 혐오... 시대가 변했다"

폐지 3년 4개월 만에 부활한 개콘이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소재로 웃음을 이끌어내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020년 폐지 당시에도 개콘은 인종차별, 외모 비하, 여성 혐오 등에 대해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제작진은 새로 시작하는 개콘이 '주말 밤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지만, 여성과 외국인 등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이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개콘에 대해 '일차원적인 약자 공격이 많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 커뮤니티 이용자는 "약자를 까면 그냥 비하고 강자를 까면 풍자다. 개그는 풍자일 때 재미있는 거고 1차원적으로 외모와 약자 혐오만 있으니 2023년에 저게 재미있을 리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용자는 "시대가 변했으면 받아들이고 맞추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약자를 헐뜯는 혐오를 개그라고 착각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14일 SNS 엑스(X·옛 트위터)에 올라온 시청자 의견(위 사진)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시청자들의 의견. SNS, 커뮤니티 캡처

14일 SNS 엑스(X·옛 트위터)에 올라온 시청자 의견(위 사진)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시청자들의 의견. SNS, 커뮤니티 캡처

SNS에도 "이게 방송에 올라가기 전까지 아무도 문제의식을 못 느꼈다는 게 놀랍다" "외국인 발음 조롱하고 국제결혼 희화화하다니. 2023년이다"라며 제작진에 변화를 촉구하는 글을 올린 누리꾼이 적지 않았다.

개콘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에도 실망감을 드러내는 글들이 상당하다. 한 누리꾼은 "봉숭아학당 코너에서 '잼민이'라는 표현을 당당하게 사용하던데 공영방송 맞느냐"'며 "예능이면 용서가 되는 표현인가. 잼민이는 어린이를 안 좋게 사용하는 표현이다. 엄연히 어린이 혐오적인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잼민이'는 게임 채팅, 인터넷 방송 등에서 어설픈 언행으로 주변에 불편함을 주는 사람들을 얕잡아 부르는 말로, 주로 조롱으로 사용된다.

성차별적 내용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대한결혼만세' 코너에서는 개그맨 정찬민씨가 "결혼하면 진짜 좋습니다. 와이프가 옷도 사주고 신발도 사주고… 그거 내 돈이야! 내 돈을 꺼내서 자기가 계산하고 왜 생색을 내는 거야? 내조의 여왕이 아니라 '내 돈의 여왕'이야!"라고 말한다.

13일 KBS 개그콘서트 홈페이지 시청자 소감에 올라온 한 시청자의 글. KBS 홈페이지 캡처

13일 KBS 개그콘서트 홈페이지 시청자 소감에 올라온 한 시청자의 글. KBS 홈페이지 캡처


"상처 주는 웃음 안 돼" vs "그냥 보면 안 되나"

시민단체는 방송 전부터 우려를 표명해 왔다. 비영리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 미디어감시팀은 방송 전 KBS에 "혐오와 차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현실을 충실히 반영하고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웃음과 재미를 선보이기를 기대한다"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우려가 현실이 됐다고 평가했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미디어감시팀 활동가는 오마이뉴스에 "'니퉁의 인간극장' 코너를 보고 '결혼 이민자의 자녀들은 마음껏 웃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며 "그 자녀들이 월요일에 등교했는데 친구들이 니퉁을 흉내 낸다면 과연 자신의 예민함을 탓해야 하는 걸까"라고 지적했다. 이어 "공영방송에 출연하는 희극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내고 연기하는 캐릭터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모습을 반영할 경우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며 "타인에게 웃음을 주는 희극인이 누군가에게 상처와 고통을 준다면 직업과 소명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개그 소재에는 좀 더 관대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개그맨 김원효씨는 지난 9일 자신의 SNS에 '차별 없는 개그 프로를 만들어 달라'는 시민단체의 요구를 전하는 기사를 공유하며 "그냥 보면 안 돼!나요? (시민)단체가 뭐라 하시는데 단체로 좀 와서 보세요!"라고 적기도 했다.

12일 개콘 시청률은 4.7%를 기록했다. 마지막 방송(2020년 6월 26일) 시청률(3.0%)보다 1.7% 높은 수치로, 부활한 개콘에 대한 시청자들의 궁금증과 기대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많다.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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