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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코 뜰 새가 없어요"... 한강다리 감시하는 '매의 눈', 수난구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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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코 뜰 새가 없어요"... 한강다리 감시하는 '매의 눈', 수난구조대

입력
2023.11.07 04:3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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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신 시도 계속 늘어... 현장 출동도 25%↑
AI 감시 덕에 투신방지·구조율 높아졌지만
대원들 업무 과중 탓 '골든타임' 놓칠 수도

지난달 21일 출동 명령이 내려지자 서울 여의도수난구조대 대원들이 고속구조정에 올라 서강대교로 향하고 있다. 최현빈 기자

지난달 21일 출동 명령이 내려지자 서울 여의도수난구조대 대원들이 고속구조정에 올라 서강대교로 향하고 있다. 최현빈 기자

"구조 출동, 구조 출동, 구조 출동!"

지난달 21일 밤 11시 25분, 요란한 굉음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수난구조대 사무실의 고요를 갈랐다. 출동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행정업무를 하던 구조대원들은 자동반사처럼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강 변두리에 세워진 0.1톤짜리 고속구조정에 몸을 실었다. "흰색 후드티에 흰색 바지, 남성으로 추정된대." 반소매 차림으로 급히 보트에 올라탄 윤봉준 구조2팀장이 대원들에게 재빨리 무전 내용을 전파했다.

출발한 지 2분 정도 됐을까. 서강대교 위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사람의 형상이 어렴풋이 시야에 들어왔다. "사람 보여? 여기선 잘 안 보인다. 보트를 좀 더 뒤로 밀어 봐." 윤 팀장의 지휘에 맞춰 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항해사가 구조정을 움직이고 잠수복을 갖춰 입은 다른 대원 2명은 갑판 앞머리로 나왔다.

20대 남성으로 추정되는 구조대상자는 'SOS 생명의 전화'에 귀를 댄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서 있었다. 생명의 전화는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다리 위에 설치된 상담전화로, 상담자가 위험한 징후를 보이면 인근 수난구조대가 출동한다. 대원들은 구조정 끝에 서서 남성의 일거수일투족을 계속 응시했다. 그사이 다리 위로 출동한 경찰관과 소방 구조대원들이 남성을 설득해 투신을 막았다. "상황 종료, 수고하셨습니다." 긴장의 10분은 그렇게 끝이 났다.

지난달 15일 서울 여의도수난구조대 소속 구조대원이 폐쇄회로(CC)TV 영상감시 출동시스템으로 현장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최현빈 기자

지난달 15일 서울 여의도수난구조대 소속 구조대원이 폐쇄회로(CC)TV 영상감시 출동시스템으로 현장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최현빈 기자

수난구조대는 한강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고에 24시간 대응하는 소방기관이다. 서울시119특수구조단 소속으로 권역 안에서 사고가 터지면 담당 소방서의 지령을 받고 현장에 나간다. 선제 조치를 담당하는 만큼 구조대의 활약에 따라 사고의 운명이 달라지는 중요한 역할이다. 1997년 여의도에 처음 생긴 뒤 지금은 서울 한강 권역(41.5㎞)에 뚝섬·반포·광나루까지 4개소가 있다. 이날 기자가 동행한 여의도수난구조대는 전체 출동 건수의 40% 이상을 처리한다.

다리 위에서 생사를 고민하는 사람은 계속 늘고 있다.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한강 교량 극단적 선택 시도자는 2021년 626명에서 2022년 1,000명으로 증가해 처음 네 자릿수를 찍었다. 올해도 9월까지 719명이나 된다. 특히 최근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경제 불황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소방당국도 감시의 눈을 더 촘촘히 짜고 있다. 2021년 12월부터는 인공지능(AI) 딥러닝 시스템을 접목했다. AI가 폐쇄회로(CC)TV 영상을 학습한 후 투신 시도자의 행동 패턴을 찾아 알려주는 과학적 체계다. 사람이 CCTV를 맨눈으로 모니터링해 위험 정도를 파악하는 이전까지 대응 방식과 비교하면 확실히 진일보했다.

구조대원들은 AI 알림이 들어오면 출동한다. 잦은 출동 덕에 투신 사망은 2021년 13명에서 올해 9월 현재 2명으로 크게 줄었다. 한 구조대원은 "수면에서 구조할 수 있어 투신 시도자의 생존율이 높아졌고 수중 수색도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수난구조대 출동 현황. 그래픽=박구원 기자

서울 수난구조대 출동 현황. 그래픽=박구원 기자

구조 성공은 대원들에게도 기쁜 일이다. 물론 아쉬운 점은 있다. AI 감시 체계 도입과 투신자 증가세 여파로 수난구조대 출동 건수는 2021년 3,126건에서 지난해 3,902건으로 24.9%나 뛰었다. 대원들의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총원이 19명인 여의도구조대의 경우 6명이 24시간 교대 업무를 도맡아야 한다. 하루에 12번 출동한 날도 있다. 다른 구조대원은 "물속 작업을 할 때 시야가 흐리면 불안감이 가중되는데, 대부분 야간 출동이라 부담이 더 크다"고 털어놨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물에선 특히 '골든타임'을 지키는 게 구조의 성패를 가른다"며 "체력 소모도 극심한 구조 특성과 투신자 증가세를 감안할 때 인력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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