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
"수백 년의 시간이 공존하는 서울은 제가 쓴 소설에는 없는 풍경입니다. 상상력을 증대시킬 수 있는 마법적인 공간이에요."
올해 제12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인 오스트리아 작가 크리스토프 란스마이어(69)의 말이다. 란스마이어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엘프리데 옐리네크(77)와 더불어 오스트리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독일어권에서 가장 돋보이는 소설가로 꼽힌다. 스스로 '반유목민'이라 생각하며 오랜 기간 세계 곳곳을 누비며 글을 썼는데,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2일 시상식 일정에 맞춰 내한한 그의 기자간담회가 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한다. 그러나 다른 삶을 살고, 다른 언어를 쓰는 낯선 이들의 삶을 상상할 수 있다면 그 경계는 무너진다. 란스마이어는 "뉴스나 역사를 통해 사실을 알 수는 있으나 느낄 수는 없는데, 문학은 낯설다고 하는 다른 삶을 생각해보게끔 하여 타자에 대한 편견을 없앤다"고 문학의 역할을 긍정했다.
동쪽으로 8,000㎞가량 떨어진 나라 한국. 그에게도 어쩌면 한국은 '타자'에 가까울 것이나, 독일어로 번역된 박경리의 '시장과 전장' '토지'를 통해 한국인들의 인생과 현실을 상상했다. 그는 "구교와 신교로 나뉘어 대적하는 일이 많은 아일랜드에 살 때 박경리의 책을 읽었다"며 "한국뿐만 아니라 아일랜드에 대해서도 생각하며 읽었더니 마음에 다가오는 게 많았다"고 설명했다.
'타자화 해체'는 그가 발표한 여러 소설에서 엿볼 수 있는 주제의식이다. 1984년 발표된 '빙하와 어둠의 공포'를 통해 그는 큰 명성을 얻었는데, 19세기 말 북극을 정복하기 위해 떠난 북극 탐험대의 이야기를 그린 이 소설은 인간의 인내와 투쟁을 감동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지구의 마지막 공간까지도 과학 기술의 힘을 빌려 타자화하는 인간의 오만과 서구 근대성을 비판한다.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 등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학살의 피해자를 타자화하지 않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 역시 '문학'에 있다. "문학 자체로는 안타까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죠. 의학이나 경제적 도움을 주려는 마음을 이끌어내는 데에는 사진으로도 충분하지만, 울고 있는 여성, 집을 잃어버린 아이 등의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것은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널리스트였던 란스마이어는 1982년부터 전업 작가가 되어 인류의 몰락을 그린 '찬란한 종말'을 발표했다. '빙하와 어둠의 공포'로 소설가의 명성을 얻은 그는, 1988년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를 소재로 한 '최후의 세계'를 통해 독일 바이에른주 학술원 문학상, 하인리히 뵐 문학상 등 유럽의 주요 문학상을 휩쓸었다.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단은 "다양한 메시지와 탁월한 문체를 통해 소설의 존재감을 상기시키는 한편, 시간의 부침에 저항하는 문학의 가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만장일치로 그를 올해 수상자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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