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전 건설노조 채용협상 보장한 미국
한국은 거꾸로 가며, 건설노동 임금 낮춰
정규·비정규직 임금격차 사상 최대 기록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1959년 미국은 사려 깊게 법 하나를 고친다. 고용과 실업을 반복해야 하는 건설노동의 특성을 고려해서다. 애초 1947년 미국의 연방노동법엔 노조의 ‘사전채용 협약(pre-hire agreement)’이 불법으로 규정됐다. 노조가 기업을 상대로 “우리 노조원을 채용하라”고 요구하는 건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불합리한 조항이라 보긴 어렵다.
그런데 미국은 수시로 일감을 구해야 하는 건설 노동자들의 현실을 파악하고는, 건설산업에선 노조의 ‘채용협상’을 인정하는 게 옳다고 결론 내렸다. 그렇게 건설업 노조의 채용 협약을 합법화한 특례조항을 59년 도입한다.(미국 연방노동법의 건설산업 단체교섭 특례, 김미영)
무려 64년 전이다. 그리고 올해 한국에선 정확히 반대의 정책이 펼쳐졌다. 정부는 건설노조가 진행해 온 ‘채용협상’을 형법상 강요·공갈로 처벌토록 했다. 노동절에 분신해 사망한 민주노총 건설노조 간부 양회동씨가 미국에서 같은 일을 했다면, 수사를 받을 일도 목숨을 버릴 일도 없었다. 노조를 통한 채용협상이 무력화되면서 건설현장에선 일감 브로커 역할을 하는 불법하도급과 그에 따른 중간착취가 늘어나 임금이 줄고, 일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조를 탈퇴하는 노동자가 늘고 있다고 한다.
즉 정부는 건설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는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임금 양극화를 줄여보겠다며 지난 2월 상생임금위원회를 출범시켰다. 9개월이 지난 지금 상생임금위가 뭘 하고 있는지 대체 알 수 없다.
‘임금격차를 줄이겠다’는 정부의 공언(空言)은, 그 반대방향으로 질주하는 정책과 대비돼 좌절을 키운다. 정부가 적대하고 와해시키고 굴복시킨 노조를 보면, “벌이가 적어 못 살겠다”고 외치는 일용직이나 간접고용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노조가 대부분인 점만 봐도 그렇다.
지난해 원청 정규직 평균 임금의 고작 40% 정도만 받는 현실을 못 견디고 임금인상을 요구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을 억압한 것이 그랬고, 안전운임제 폐지에 반대하는 화물연대의 파업에 대한 강경대응이 그랬으며, 올해엔 건설노조 노동자들의 채용 협상권을 무력화시킨 사례가 그랬다. 정부와 여당이 반대하는 노란봉투법도 국제기준과 임금 격차 완화 측면에서 보면 옳은 방향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간접고용(용역·파견 등) 근로자들이 고용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자(원청)와의 단체교섭은 항상 가능해야 한다는 기준을 정하고 있다.
만약 정부가 진정으로 임금격차 축소의 뜻이 있다면, 정규직 노조의 일부 이기적인 행태는 적대할지언정 비정규직 노조의 권리는 향상되도록 지원해야 옳다. 노조의 역할은 임금 인상을 포함해 ‘다닐 만한 직장’을 만드는 것이며, 이는 한국의 비정규직에 가장 필요한 부분이다. 일부 과한 요구나 선을 넘는 불법행위는 별도로 제재하더라도, 비정규직의 단결권과 교섭권 자체를 ‘죄악시’하면서 어떻게 임금격차를 완화하겠다는 것인가. 지난달 24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정규직·비정규직 임금 격차(월평균 166만6,000원)는 ‘역대 최대’로 벌어졌다.
임금격차는 많은 사회문제를 키우는 숙주이다. 임금격차가 이렇게 커서는 한국사회의 끔찍한 ‘승자독식’의 체계를 무너뜨릴 수 없고, 최악의 저출생과 입시과열이라는 고질병을 치료할 수가 없다. “공부 못하면 저렇게 된다”고 손가락질하는 목소리도 끔찍하지만, 비정규직들이 일하는 곳을 원천적으로 ‘다닐 만한 직장’이 될 수 없도록 족쇄를 채워 놓는 정책은 그런 목소리를 태동시키는 뿌리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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