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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누명' 쓰고 사형당한 고 오경무씨 56년 만에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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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누명' 쓰고 사형당한 고 오경무씨 56년 만에 무죄

입력
2023.10.30 17:00
수정
2023.10.30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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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재심 1심 무죄 선고하며 사과
북한에 붙들려 사상교육 받고 풀려나
"불법 체포·가혹행위 따른 위법 증거"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서울고법 청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서울고법 청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가족의 정에 이끌려서 한 행위로 인해, 가혹한 결과가 발생한 점에 대해 피고인에게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3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 조병구 부장판사는 50여년 전 사형집행을 당한 피고인에게 깊은 사과의 말을 남겼다. 이날 재판부는 간첩으로 몰려 사형 집행을 당한 고 오경무씨의 재심 선고공판을 열어 무죄를 선고했다.

경무씨는 1967년 남동생 경대씨를 따라 맏형 경지씨를 만나러 갔다가 북한으로 밀입국하게 됐다. 6·25전쟁 때 사라졌던 맏형은 북한 간첩이 돼 오밤중에 나타났고 "일본에서 돈을 벌게 해주겠다"며 경대씨를 먼저 속인 뒤 북한으로 끌고 갔다. 나흘의 사투 끝에 탈출한 경대씨는 이후 "남은 가족들을 해치겠다"는 맏형의 협박에 못이겨 경무씨를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경무씨는 결국 북한으로 간 뒤 붙들려 40여일간 사상교육을 받았고, 가까스로 풀려났지만 한국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 여동생 정심씨 역시 간첩으로 몰린 두 형제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법원은 경무씨에게 사형, 경대씨에게 징역 15년, 정심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경무씨가 중앙정보부에 자수하며 사정을 설명했으나 재판부는 이들 남매에 대해 "(맏형이) 북괴로부터 지령을 받고 남파된 간첩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며 유죄 판단을 내렸다. 결국 경무씨는 1970년대 초 사형 집행을 당했고, 경대씨는 1981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2016년 재심을 청구한 경대씨는 2020년 무죄 판결을 확정받았고, 사형당한 경무씨와 여동생 정심씨에 대한 재심도 이어졌다. 검찰은 당초 재심 개시에 동의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으나, 올해 5월 첫 공판에서 돌연 "이 사건은 북한공작원이 관여된 순수 안보 사건"이라며 입장을 뒤집었다. 국가폭력에 의한 조작 사건이 아닌, 북한공작원이 지령을 받고 남한에 잠입한 사건이라는 취지였다. 검찰은 또 과거 경무씨 등에 대한 불법 구금이나 체포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그러나 이날 남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오경무씨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행위를 했다고 보기 어렵고, 정심씨 역시 오빠를 간첩으로 알면서 편의를 제공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당시 수사기관이 제출한 증거는 불법 체포 및 가혹 행위에 따른 것으로, 위법한 증거 수집에 해당한다"며 "현행 국가보안법 등에 따라 피고인들의 행위가 유죄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무죄 판결 이유를 밝혔다.

선고 직후 정심씨는 "오빠는 너무나 정의로웠던 분인데 아무런 힘이..."라며 말을 끝맺지 못하고 연신 눈물을 흘렸다. 변호인단은 "재심으로 무죄가 선고됐지만 이미 고인이 된 오경무씨는 돌아올 수가 없다"며 "이 사건은 돌이킬 수 없는 사법살인 피해자 사건이고 검찰이 항소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또 "검찰이 재심 개시 후 갑자기 입장을 바꿔 80대 노인인 경대씨까지 증인으로 부르고자 했던 것 등에 유감을 표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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