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수요집회 혐오 발언한 5명 불송치
'인권 최후의 보루' 인권위도 진정 기각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선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시위'(수요집회)가 열린다. 그런데 수요집회 현장 근처에서 맞불성 집회를 열고,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 단체의 평화 집회에 대해 노골적 야유나 비하성 비아냥을 쏟아내는 보수단체들이 있다.
혐오 발언을 일삼는 이들을 제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작 경찰은 모욕죄 등으로 고소당한 이들에게 불송치 결정을 내리며 사실상 '혐오 면죄부'를 준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관련 진정을 기각하면서, 수요집회 참가자들은 앞으로도 고스란히 이들 단체의 혐오 발언을 계속 들어야 할 처지가 됐다.
"위안부 앵벌이" 외쳐도 명예훼손 아니다?
27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종로경찰서는 정의기억연대가 보수 성향 단체인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의 김병헌 대표 등 수요집회 반대 집회 참가자 5명을 모욕 및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한 사건에서 전원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정의연은 고소 당시 이들이 반대 집회에 참석해 모욕적 발언을 하는 증거 영상과 발언 정리본 등을 제출했다. 경찰 조사에서 피고소인들 일부가 △"성노예는 무슨 성노예냐, 일본군 위안부는 사기다" △"반일정신병자들은 빨리 병원으로 가라" △"위안부 앵벌이, 할 게 없어 위안부팔이를 하고 있어?" 등의 발언을 한 사실이 인정됐다.
하지만 경찰은 발언들이 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의견을 "다소 격앙되게 표현한 것"일 뿐 정의연 측을 비방하거나 인격을 폄하하려는 고의를 가지고 발언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자유도 중요한 권리지만, 역사 피해자들의 평화적 집회를 반복적으로 혐오하는 것까지도 보호 대상인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혐오 표현을 이유로 집회 자체를 금지하는 건 위험하지만, 혐오 표현을 반복하는 참가자 개인은 규제할 수 있다"며 "국가가 이를 방치하는 건 인권 보호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 진정 기각…정의연 행정소송
'인권 최후의 보루'로 불리는 인권위도 문제를 방치하긴 마찬가지다. 김용원 인권위 상임위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침해구제제1위원회는 8월 회의를 열고 정의연이 낸 구제 진정을 기각했다. 상충하는 두 집회 중 특정 집회(수요집회)를 국가가 우선 보호할 수 없다는 등의 근거를 제시했다.
이는 인권위의 앞선 결정과 상충한다. 인권위는 지난해 수요집회 방해 행위와 관련해 긴급구제조치를 결정하며 경찰이 △반대 집회 측에서 명예훼손, 모욕을 하지 않도록 현장에서 권유 또는 경고할 것 △피해자 측에서 처벌을 요구하면 적극 제지하고 수사할 것을 권고했다.
기각 결정의 절차적 합법성도 논란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소위원회 회의는 구성 위원 3명 이상의 출석과 3명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규정하는데 김 위원은 위원 2명이 기각, 1명이 인용 의견을 냈음에도 최종 기각했다. 사무처가 법적 근거가 없는 결정으로 보고 후속 조치를 진행하지 않자 김 위원은 직원들의 '업무 배제'를 요구했다. 검찰 출신 변호사인 김용원 상임위원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집회·시위의 자유에 따라 수요시위나 반대 집회는 똑같이 보호받아야 한다"며 "특별한 사정 없인 사전 억제할 수 없다"고 판단 이유를 밝혔다.
정의연은 서울행정법원에 인권위 권고를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냈다. 권영국 민변 집회·시위 인권침해 감시변호단장은 "노골적 모욕과 (상대 집회) 방해까지 표현의 자유라는 범주에 포함시키긴 곤란하다"며 "인권침해를 방지해야 할 기관들이 오히려 방치하거나 허용하는 식의 공권력 행사는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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