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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 간다는 애는 없었다" 폐교 위 특수·일반학교 '아름다운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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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 간다는 애는 없었다" 폐교 위 특수·일반학교 '아름다운 공존'

입력
2023.10.28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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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건물 노후·협소 문제 겪던 인근 두 학교
도봉고 부지 먼저 이용하기로 한 도봉초
도솔학교 초등부와 함께 쓰는 방안 양해
시교육청 "이해·협력으로 아름다운 동행"

9월 21일 서울 도봉초에서 진행된 도봉고 이전 운영 방안에 대한 설명회에 도봉초 보호자들이 참석해 있다. 도봉초는 한부모가정, 조손가정 등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모두 포괄하는 의미에서 학부모 대신 보호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서울시교육청 제공

9월 21일 서울 도봉초에서 진행된 도봉고 이전 운영 방안에 대한 설명회에 도봉초 보호자들이 참석해 있다. 도봉초는 한부모가정, 조손가정 등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모두 포괄하는 의미에서 학부모 대신 보호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서울시교육청 제공

"도솔학교 시설이 매우 열악하다고 들었다. 학부모들의 이해를 위해 영상을 보여달라."

"화재, 지진 등이 났을 때 5층 도솔학교 학생들의 피난 동선은 확보되는 건가. 걱정된다."

지난달 21일 서울 도봉구 도봉초등학교에서 열린 학교 임시 이전 관련 학부모 설명회. 오래된 학교 건물의 리모델링을 위해 내후년부터 2년간 인근 도봉고등학교 폐교 부지로 이사하는 방안을 설명하는 자리였는데, 학부모 상당수는 자녀가 다니는 도봉초도, 임시 교사로 쓰일 도봉고도 아닌 도솔학교에 대해 질문했다. 서울도솔학교는 도봉초에서 2㎞ 남짓 떨어진 특수학교로, 두 학교 학생들은 조만간 '한 지붕 이웃'이 될 사이다. 도솔학교 초등부 또한 학교 개축을 위해 도봉초로 가는 길의 중간쯤에 있는 도봉고에서 임시 기거할 계획이라서다.

서울시교육청이 도봉고 부지를 도봉초와 도솔학교가 같이 쓰는 방침을 알린 건 불과 한 달 전 일이었다. 특수학교 학부모들의 이른바 '무릎호소'로 사회적 주목을 받은 서울 강서구 서진학교 사례를 떠올린다면, 도봉초 학부모들의 반발도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 그러나 '결사반대' 메시지는 없었다. 오히려 도솔학교와 그곳 학생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돕고자 하는 질문들이 나왔다.

도봉초와 도솔학교 초등부의 공존은 이런 배려를 바탕으로 현실화됐다. 서울시교육청은 27일 2025년 3월부터 도봉고 1~4층은 도봉초가, 5층은 도솔학교 초등부가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봉고는 학생수 감소로 서울에서 처음으로 문을 닫게 된 일반고로 내년 2월 폐교된다. 서울시교육청은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의 아름다운 동행이 시작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 지붕 아래 입주하게 된 두 학교 모두 교육공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1966년 문을 연 도봉초는 노후 시설을 전면 개선하는 그린스마트미래학교 사업이 진행될 2년간 임시 교사로 쓸 건물이 필요했다. 1971년 사립 '인강학교'로 문을 연 도솔학교는 2019년 공립으로 전환됐지만, 공간 부족 문제를 계속 겪어 왔다. 교실 면적이 32㎡로 일반 공립학교의 절반 수준이다. 지하에 위치한 급식실은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휠체어를 탄 학생이 부축을 받아 이동해야 하고, 그마저도 협소해 '3교대 식사'를 해야 했다. 학교 개축 공사가 불가피했고, 그러려면 학생들을 분산할 곳이 필요하던 참이었다.

도봉고 전경(왼쪽)과 내부 공간. 서울시교육청 제공

도봉고 전경(왼쪽)과 내부 공간. 서울시교육청 제공

이렇듯 두 학교는 공통의 목표가 있지만, 교육청이 처음부터 양쪽을 감안하고 사업을 추진한 건 아니었다. 지난해 8월 서울 도봉고 폐교 방침이 정해진 후, 도봉초가 먼저 같은 해 12월 도봉고 폐교 부지를 임시교사로 활용하는 주체로 결정됐다. 도봉초 측은 올 상반기부터 도봉고 부지를 실사하며 임시교사 활용 계획을 자체적으로 세워놓기도 했다. 그러던 중 도솔학교에서 8월 초등부를 도봉고로 이전하는 것을 시교육청에 요청했고, 시교육청은 8월 말에 도봉초가 1~4층, 도솔학교가 5층을 사용하는 안을 마련했다. 정문은 도솔학교, 후문은 도봉초 학생이 이용해 동선을 분리하는 계획도 세웠다.

갑작스러운 계획 변경에 도봉초 보호자들도 처음엔 술렁였다. 새로운 공간으로 통학하는 데다 다른 학교 소속 아이들까지 같은 공간을 쓴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학교와 보호자회 임원, 동문회가 '공존'의 뜻을 모으고 학부모들을 상대로 설득 작업에 들어갔다.

이윽고 통합과 공존이 아이들 교육에 도움이 된다며 뜻을 같이하는 보호자들이 많아졌다. 이준규 도봉초 교장은 "조금 지나고 나니 오히려 보호자 몇 분이 '자꾸 특수와 일반의 분리를 강조하면 우리 학교에 있는 아이들(특수교육대상자)에게도 피해가 간다. 분리를 뛰어넘는 것도 고민해 보자'고 먼저 제안하기도 했다"고 했다. 방미현 도봉초 보호자회 회장은 "이번 결정으로 인해 전학을 가겠다거나 학교를 못 다니겠다고 말하는 보호자는 없다"며 "설명회 때도 오히려 저희 아이들이 도솔학교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면 어떡하냐는 질문이 나왔다"고 했다.

유미숙 도솔학교 교감은 "사실 (도봉고 이전이) 많이 힘들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도봉초도 그렇고 학부모들도 같이하기로 동의한다고 해서 굉장히 고마운 상황"이라며 도봉초의 결정을 반겼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두 학교 구성원들이 아름다운 동행을 완성할 상생의 공동체 의식을 보여줬다"라며 "두 학교의 시설 개선, 공동 운영이 모두 안정적으로 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홍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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