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외국인 가사노동자, 2등시민은 안 된다

입력
2023.10.24 00:00
27면
0 0
이주 가사·돌봄노동자 시범사업 저지 공동행동 소속 회원들이 8월 28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이주 가사·돌봄노동자 시범사업 저지 공동행동 발족 기자회견에서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이주 가사·돌봄노동자 시범사업 저지 공동행동 소속 회원들이 8월 28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이주 가사·돌봄노동자 시범사업 저지 공동행동 발족 기자회견에서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몇 년 전 홍콩에 여행을 갔는데, 버스를 타고 지나가며 고가도로 아래와 공원에 많은 여성이 자리를 펴고 모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현지 사람이 "저 사람들은 홍콩 가정에서 일하는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인데, 주말에는 고용주가 집에서 내보내서 노숙을 하는 거예요"라고 설명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이 보이던 수백 명의 노숙하는 여성의 모습은 기억 속에서 잘 잊히지 않는 장면이다. 홍콩, 싱가포르에는 지금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저소득 국가에서 이주한 가사노동자가 수십만 명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아 월 60만~80만 원 수준의 낮은 임금을 받고 고용주의 집에서 거주하면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가사노동자에 대한 학대와 인권침해가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돌봄 분야에서 외국인 노동자 도입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최근 서울시에서 싱가포르와 유사한 방식으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곧 시행될 예정이다.

한국의 심각한 저출생 상황이 적절한 돌봄서비스가 없기 때문으로 보고, 저소득 국가에서 저렴한 돌봄노동자를 들여와서 아이 돌봄과 가사를 외주화하는 것을 대안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홍콩과 싱가포르가, 각각 2022년 합계출산율이 0.8명, 1.04명으로 한국과 함께 세계 최저를 다투고 있는 것을 보면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저출산에 대한 해법이 될 수는 없는 것 같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살펴봐도 홍콩은 한국보다 오히려 낮고, 싱가포르는 한국보다 조금 높은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외국인 노동자를 통한 돌봄의 외주화는 가사, 육아노동의 성차별적 구조를 더 공고히 할 우려도 있다.

노인 돌봄의 문제는 어떨까? 한국의 노인인구는 급속도로 늘고 있으며 노인장기요양, 간병 등 노인 돌봄 분야 종사자는 현재 대부분 고령의 여성이다. 급속하게 증가하는 장기요양, 간병 분야 수요를 보면, 외국인 돌봄노동자의 증가는 피할 수 없는 미래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하는 방식으로 외국인 돌봄노동자를 도입한다면 많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최저임금보다 낮은 일자리를 도입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 법이 적용되지 않는 차별적 신분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외국인 노동자가 다른 노동시장으로 이동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어려우니 실효성도 의문이다.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임금과 관련하여 "월 100만 원이면 정책효과가 좋을 것"이라는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의 발언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정책을 시사하고 있어 우려스럽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노동정책은 돌봄 노동을 질 낮은 일자리로 만들 뿐 아니라 이민과 관련하여 포용적인 사회정책 추진도 어렵게 한다. 인구구조의 급속한 변화로 인하여 한국의 이민자는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계속된다면 이후 이민 인구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발생할 것이 우려된다. 외국인 노동자는 하나의 일자리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 한국 사회에 함께 하게 될 것이고, 평등하고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가지 않는다면 한국 사회의 이민정책은 암초에 부딪칠 것이다. 외국인 돌봄노동자 정책에 대한 전반적 고민이 필요한 때다.


김남희 변호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