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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겜 2주전 무릎수술... 서른아홉 '비보이 전설'이 희망을 놓지 않았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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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겜 2주전 무릎수술... 서른아홉 '비보이 전설'이 희망을 놓지 않았던 이유

입력
2023.10.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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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브레이킹 은 김홍열]
무릎 부상에 나쁜 대진운 겹쳐 낙심 상태
의료진이 보낸 희망 메시지가 큰 힘 됐다

7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공슈 캐널 스포츠파크 체육관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브레이킹에서 준우승을 차지해 은메달을 획득한 김홍열이 시상식에서 웃고 있다 있다. 항저우=연합뉴스

7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공슈 캐널 스포츠파크 체육관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브레이킹에서 준우승을 차지해 은메달을 획득한 김홍열이 시상식에서 웃고 있다 있다. 항저우=연합뉴스


"8강 대진을 보고 사실 낙담했어요. 부상으로 컨디션도 안 좋고, 강력한 우승 후보와 붙었거든요. 지겠구나 싶었죠."

11일 서울 마포구 연습실에서 만난 항저우 아시안게임 브레이킹(브레이크 댄스) 종목 남자부 은메달리스트 김홍열(39·도봉구청)은 대회 도중 직면했던 좌절감을 털어놨다.

비보이들 사이에선 홍텐(hong10)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김홍열. 그는 2001년부터 국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불혹을 바라보는 현재까지 정상급 기량을 유지해 브레이킹 세계에선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세계 최고 권위 대회로 여겨지는 ‘레드불 비씨 원 월드파이널’에서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두 차례(2006년, 2013년)나 우승하기도 했다. 이런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그가 좌절감을 느꼈다니, 그것도 8강에서?

가장 중요했던 고비를 끝내 넘기고 김홍열은 시상대에 올랐다. '2024 파리 올림픽' 최종예선전 출전자격도 확보했다. 위기 극복의 원동력은 감독도, 김 선수 본인도 아닌, '말 한 마디'였다. 낙담한 김 선수의 처지에 의료진이 공감하며 보낸 메시지가 그에게 어마어마한 힘을 불어넣어줬던 것. 그 사연을 자세히 들어봤다.

-브레이킹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첫 아시안게임에서 초대 메달리스트가 된 기분은 어떤가요?

"영광스럽죠. 금메달과 초대 챔피언 타이틀을 놓쳐 아쉽지만, 그 동안의 노력이 보답받은 것 같아 기분 좋고 후련해요. 올림픽만 목표로 했었지, 아시안게임은 생각도 못했거든요. 코로나로 대회가 1년 늦춰지는 바람에 기회가 생겨 뒤늦게 국가대표가 된 운도 따라주었어요."

(브레이킹 선수 선발 방식과 절차를 놓고 대한체육회 대한민국댄스스포츠연맹 등 관련 단체 및 비보이 내부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그 와중에 지난해 남녀 2명씩 대표를 선발했다. 이후 추가 선발이 결정됐고, 김홍열은 올해 4월 '2023 브레이킹 K 파이널' 대회에서 우승하며 뒤늦게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수가 됐다.)

-결승에서 만난 일본의 나카라이 시게유키(Shigekix)에게 1-2(4-5 3-6 6-3)로 아쉽게 졌어요. 전에도 겨뤄서 승리했던 영상이 유튜브에도 올라와 있던데요.

"그 친구는 2002년생 (신성)이죠. 정말 잘하는 친구예요. 제가 세계대회 나가서 이름을 처음 알린 게 그때쯤이니까 (나이 차도 상당하죠). 그렇지만 심사를 20년 가량 받아본 입장에서 저 스스로는 이겼다고 생각했습니다. 상대가 비슷한 동작을 반복해서 그렇게 생각했어요. 심사가 엄격히 이뤄진 것 같지 않아요. (김 선수는 실제로 연기 도중 검지와 중지 손가락 2개를 심사위원단에 펴 보이며 상대의 반복동작을 어필하기도 했다.) 아시안게임 이전에 우리 문화에서 배틀(시합)했을 때 2승 1패였는데 이번에 져서 총 전적 2승 2패가 됐네요."

-결승에서 진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결승전 무대 세 번의 연기 중 첫 연기에서 중도에 왼쪽 종아리에 쥐 나는 느낌이 났어요. '순간적으로 너무 힘을 주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거나 상태가 악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힘을 약간 풀고한 점도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게 패인의 전부는 아니었다. 김 선수는 모든 경기를 마친 8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왼쪽 무릎을 꿰맨 사진 한장을 올렸다. “2주 전 발생한 일이고, 통증이 심해 걷지도 못했다”는 글도 남겼다.)

대회 2주 전 넘어져 무릎 5바늘 꿰메

김홍열 선수가 공개한 무릎 꿰멘 사진. 김홍열 인스타그램 캡처

김홍열 선수가 공개한 무릎 꿰멘 사진. 김홍열 인스타그램 캡처

-큰 부상이 있었던 건가요?

"대회 2주 전 비오는 날 걷다가 미끄러져 넘어졌어요. 5바늘 꿰메고, 부어올랐습니다. 그 전에 연습과 대회 준비는 끝내 놓아서 처음엔 걱정하지 않았죠. 그런데 며칠 쉬었는데도 붓기가 가라앉지 않아 다리를 접지 못하겠는 거예요. 무릎을 쓰는 동작을 하려 바닥에 살짝만 대도 아팠어요. 제 몸이 자연스럽게 무릎 접촉을 피하더라니까요. 그래도 예선 경기까지 2주 정도 남았으니까 '낫고 할 수 있겠지' 생각했지만, 대회 전날까지도 바닥에 무릎을 못 대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토너먼트 대진이 좋도록) 예선 1등을 목표로 했는데, 예선서 살아남는 것으로 목표를 바꿨죠."

-그 몸으로 어떻게 경기를 치른 건가요?

"첫 경기 때 실수가 나왔어요. 다행히 25명 중 8등으로 예선을 통과했죠. 16강 라운드(4명이 4개조로 나눠 각조 1ㆍ2위만 8강 토너먼트 진출)도 중국 선수에게 한 번 패해 조 2위로 통과했는데 8강서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한명이었던 아미르 자키로프(카자흐스탄)를 만났습니다. 대진표를 보고 힘들구나 생각했죠. 몸도 아프고, 예선 성적도 안 좋았고, 이길 줄 알았던 중국 선수와 경기에서는 심사위원 점수가 잘 안 나와 주눅도 들었어요. '8강서 떨어지겠구나'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반전의 계기는 뭐였나요?

"8강전 앞두고 대한민국 의료진 중 심리담당 선생님에게 메시지를 보냈어요. '(예선과 16강 라운드가 치러진) 첫 날은 버텼는데 (8강서) 제일 강한 상대와 붙는다'고. 그랬더니 '그럼 잘 됐네요. 그러면 이길 생각하지 말고, 본인 할 것만 하세요'라고 메시지가 와서 큰 도움이 됐어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져) 집중하게 됐습니다. 음... 뭐라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각성상태가 돼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도 누구와 붙어도 이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죠. 별로 힘들지도 않고, 컨디션도 좋아졌어요. 8강, 4강, 결승 사이 시간 차도 있어 (체력 회복에도) 좋았습니다."

-폐막식 기수로도 뽑혔어요.

"어떻게 뽑혔는지도 저도 잘 모르겠어요. 기특하다고 잘 봐주신 것 같아요, 하하하. 제가 사실 내성적이라 남 앞에 나서는 걸 원치 않는데, 기수는 색다른 경험이고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특히 춤만 추다가 더 인정 받는 느낌이라 좋더군요."

"의료진의 위로·공감 메시지 큰 힘"

7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공슈 캐널 스포츠파크 체육관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브레이킹 결승 토너먼트에서 한국 김홍열 연기를 펼치고 있다. 항저우=연합뉴스

7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공슈 캐널 스포츠파크 체육관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브레이킹 결승 토너먼트에서 한국 김홍열 연기를 펼치고 있다. 항저우=연합뉴스

-9월에 새로 창단된 도봉구청에 입단했더군요.

"비보이나 비걸 선수가 개인적으로 특정 기업이나 브랜드의 후원을 받는 경우는 있어도 실업팀 창단은 처음이에요. 다른 나라 선수들도 '실업팀은 세계 최초'라며 부러워하죠. 저도 월급을 받아 직업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됐고, 경제적으로도 더 자유로워져 춤에 집중할 수 있게 됐죠."

(도봉구청은 실업팀이 전무한 브레이킹팀을 국내 최초로 창단(감독 1명, 선수 6명)해 인건비, 훈련장 임차료, 대회참가비, 피복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비보이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뭐였죠?

"중학교 때 친구가 '원킥'이라는 간단한 동작을 보여줬는데 나도 집에서 연습하니 되더라고요. 그 후부터 비보이 영상을 찾아보며 하나씩 독학으로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때는 가르쳐주는 곳이 없어 영상이 나오면 비디오로 녹화해서 반복하며 연습했습니다."

-부모님이 반대하시진 않았나요?

"성적도 괜찮았고, 처음엔 공부를 하면서 춤을 추니까 놔두셨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 공부가 필요 없다고 생각해 그만둔다고 했더니, 부모님께서 많이 반대하셨죠. 그러나 결국 고교를 중퇴했고, 나중에 검정고시를 봤어요."

(이날 연습실을 찾은 그의 부모님은 “자식이 공부 안 하고 춤춘다고 하면 어느 부모나 말렸을 것”이라며 “여러 국제대회에 입상하고, 세계 최고가 되어도 몸 다칠까봐 걱정되고 그랬다”며 마음 고생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래도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전 국민의 응원을 등에 업고 은메달을 딴 것도, 기수로 나선 것도 다 대견스럽다”고 미소 지었다.)


"챔피언 아닌 도전자로 올림픽 준비"

항저우아시안게임 브레이킹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김홍열(왼쪽) 선수와 이우성 감독. 도봉구청 제공

항저우아시안게임 브레이킹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김홍열(왼쪽) 선수와 이우성 감독. 도봉구청 제공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선수생활을 이어 오는 비결이 있다면 뭔가요?

"건강 관리에 신경을 많이 써요. 브레이킹 세계에서 저보다 나이 많거나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이 아직 없습니다. 다만 나이들어도 대회를 출전할 수 있지만, 성적을 내는 건 다른 문제죠. 사실 힘들기도 해요. 몸은 몸대로, 또 어린 선수들이 쌩쌩한 몸으로 연기하는 것 보면 부담되고, 제 몸은 더 이상 저렇지 않은 걸 알아서 더 그렇죠. 그래서 이젠 마음가짐을 바꿨어요. 언제까지 (선수생활을) 할지 모르겠지만, 챔피언으로 맞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도전자라 생각하고 젊은 친구들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젊은 선수들의 도전이 만만치 않아 보여요.

"그래도 불가능은 없습니다. 실력있는 선수들과 계속 경쟁하고, 어느 정도 성과도 이루고 있는 걸 보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더 잘 관리하고, 열심히 연습하면 (나이와 체력의 한계를 극복하고) 충분히 겨룰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시안게임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파리올림픽 직행 티켓은 놓쳤어요. 내년 올림픽 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내년 6월쯤 열리는 올림픽 최종예선전에 출전합니다. 세계 각국 대표 40명 가량이 겨뤄 10명을 뽑죠. 엄청난 전쟁터가 될 거예요."

-이루고 싶은 꿈은 뭔가요?

"10월 20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레드불 비씨원(Red Bull BC One) 대회에 출전합니다. 스포츠와 관계없이 브레이킹 최고 권위 대회라, 세번째 우승이 목표죠. 이후에도 몇몇 국제대회에 출전한 뒤 휴식을 갖고 내년 올림픽 최종예선을 준비할 생각이에요. 올림픽에 출전하게 되면 남들이 예상하지 못한 동작과 연기를 보여줘 제대로 결실을 이루고 싶어요."

박민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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