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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장르지만, 듣는 것으로 소설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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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장르지만, 듣는 것으로 소설 쓰고 싶었다"

입력
2023.10.23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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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솔아 장편소설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
'최선의 삶' 이후 8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
자기 자신을 버려본 적 있는 네 여자의 삶
"괴롭던 소설 쓰기, 재미 느껴…틀을 깼다"

신간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를 낸 임솔아 작가가 16일 한국일보에서 인터뷰를 했다. 2013년 시로 등단한 그는 2015년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에 당선돼 소설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장편소설 '최선의 삶', 중편소설 '짐승처럼',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겟패킹'을 펴냈다.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김예원 인턴기자

신간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를 낸 임솔아 작가가 16일 한국일보에서 인터뷰를 했다. 2013년 시로 등단한 그는 2015년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에 당선돼 소설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장편소설 '최선의 삶', 중편소설 '짐승처럼',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겟패킹'을 펴냈다.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김예원 인턴기자

세찬 바람이 부는 어느 날. 한 여자가 추위를 피하려 정거장 인근 건물 안에서 한참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린다. 단지 그뿐이었다. 백인이 아닌 그녀가 백인 경찰에게 체포된 이유 말이다. 미국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1929~2012) 시 '한 장면'의 화자는 증인처럼 그 인종차별의 '장면'을 전한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에서 말한다.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

2013년 시로 등단해 소설과 시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작가 임솔아(36)의 새 장편소설 제목은 여기서 따왔다. 작가로서 관찰, 바라본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던 때 다시 만난 시가 바로 '한 장면'이었다. 이달 16일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임솔아 작가는 "세월호 참사 이후에 어떤 일을 '바라본다'는 게 뭘까를 줄곧 고민했다"며 "소설은 말하는 장르지만,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소설을 쓸 수는 없을까 생각했다"며 이번 작품을 쓰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인상 깊었던 시의 마지막 문장은 경청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쓰는 내내 울타리이자 나침반이 됐다.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임솔아 지음·문학동네 발행·328쪽·1만6,800원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임솔아 지음·문학동네 발행·328쪽·1만6,800원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문학동네 발행)는 임 작가가 '최선의 삶' 이후 8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이다. 소설에는 제도권 밖 소수자로서 분투하는 예술가를 위한 그룹 전시를 계기로 연결된 네 여자가 나온다. 이들은 모두 주어진 역할에 부응하려 애쓰다 "자신을 죽여 봤던"(이미상 작가) 사람들이다. 예컨대 한쪽 귀의 청력을 잃은 '화영'은 학창 시절 좋은 친구가 되려 억지 취향을 가지려 노력하고, 퀴어인 '우주'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인정받기 위해 대학에 가고 안정된 직장에 취업한다. 작가는 이들이 각자의 이별을 통해 진짜 자신을 찾아 한발 내딛는 과정을 담백하게 그렸다. 결핍은 예술로 이어지고 타인은 물론 나 자신과의 성숙한 관계를 조금씩 체득한다.

임 작가는 이번 소설을 "애매하고 어정쩡한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자극적이지 않고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인물 없이 일상적인 내용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독자 반응을 걱정한 적도 있다. 하지만 우려가 무색하게 그 담백함이 임솔아라는 작가의 색이 된 듯하다. "소설과 현실의 경계가 일방적이지 않고 서로 유리되지 않은 채로 뒤섞일 수 있길", 또 "책 속 인물이 바깥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는 것처럼 영향을 끼치길" 바라는 작가의 소설관이 충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덕분에 책을 읽다 보면 소설 속 네 인물 중에서도 자신이 더 몰입하는, 그러니까 어딘가 자신을 닮은, 인물을 만나게 된다. 서로의 존재에 힘을 얻는 순간이다.

임솔아 작가는 인터뷰에서 소설 속 인물들이 전시 그룹으로 연결되는 설정 등에 실제 경험이 투영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심적으로 힘든 시기에 미술 작가·비평가 그룹과 1년 정도 전시를 준비한 적 있다"면서 "(덕분에) 가치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김예원 인턴기자

임솔아 작가는 인터뷰에서 소설 속 인물들이 전시 그룹으로 연결되는 설정 등에 실제 경험이 투영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심적으로 힘든 시기에 미술 작가·비평가 그룹과 1년 정도 전시를 준비한 적 있다"면서 "(덕분에) 가치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김예원 인턴기자

이번 작품으로 임 작가는 소설 쓰기의 재미를 느꼈다고 했다. 그는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미투 이후에는 쓰는 일이 괴로웠고, 두 번째 소설집('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2021)은 의무감이나 책임감 같은 무거운 마음으로 썼다"고 돌아봤다.

변화는 스스로 정해뒀던 금기, 틀을 깰 때 찾아왔다. "빽빽하게 정해두고 쓰다가 생각한 대로 소설이 가지 않으면 무너지곤" 했던 작가는 이번 소설에는 "자유도를 최대한 열어 둔" 채로 임했다. 단편 '마피아는 고개를 들어 서로를 확인해주세요'(문장 웹진 2021년 10월)를 쓰고 나서 얻은 용기로, 이듬해인 2022년 여름부터 올여름까지 계간 문학동네에이 소설을 연재하는 동안 어떤 키워드도 정해두지 않았다. 마지막 장인 '정수'의 이야기에 이르러서야 하나의 서사로 꿰어지고 독자를 청자로서 소설 안으로 끌어당기는 독특한 구조도 그 덕분에 탄생했다. 작가는 "(틀을 깬 것이) 즐겁게 쓰는 일을 지속하고 싶다는 욕망과 맞닿아 있었던 것 같다"면서 "껴안고 가면서 즐겁게 쓰려고 했다"고 말했다.

작가는 요즘 시를 쓴다. 그에게 시와 소설은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뗄 수 없는 무엇이다. (이번 소설의 제목은 물론 각 장의 제목도 모두 시에서 왔다.) 차이가 있다면 "의자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 소설과는 달리 수첩을 들고 바깥을 돌아다니며 시를 쓴다"고 했다. 시 원고 마감이 바쁘다는 그의 말에 밖을 관찰한, 아니 경청한 시인 임솔아도 벌써 기대된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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