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티안→쿤밍행 여객열차 탑승해 보니]
차로 사흘 걸리던 길… 10시간으로 단축
내륙 국가에서 물류 허브 '연결 국가'로
지난해 라오스 공공 부채만 145억 달러
‘란창 열차에 탑승하신 것을 환영합니다(欢迎乘坐澜沧号动车组列车).’
지난 8일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 북동쪽의 라오스-중국 국제여객열차(LCR) 비엔티안역. 중국 쿤밍행 열차에 올라타자 중국어로 쓰인 환영 문구가 승객들을 맞았다. 빨간 티셔츠를 맞춰 입은 중국 단체 관광객은 객차 내부를 둘러보더니 “티엔나(세상에)!", “타이빵러(멋지다)!"라고 외쳤다. 라오스인 승무원은 승객들의 티켓을 확인한 뒤 유창한 중국어로 “중국 국경을 넘기 전에 라오스 마지막 역인 보텐역에서 모두 내려 입국 수속을 밟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라오스어, 중국어, 영어 순서의 안내 방송이 끝나자 열차는 중국을 향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동남아 연결하는 ‘철(鐵)의 실크로드’
비엔티안과 중국 남부 윈난성 성도인 쿤밍을 연결하는 중국-라오스 철도는 중국이 구상하는 중국 중심의 초대형 경제벨트인 ‘일대일로(一帶一路ㆍ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의 한 구간이다. 지금은 비엔티안까지만 철도가 깔렸지만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까지 연결될 예정이다. 쿤밍에서 미얀마 양곤을 관통하는 서부선, 쿤밍에서 베트남 하노이와 호찌민을 거쳐 캄보디아로 향하는 동부선 등으로 구성된 범아시아 철도망을 구축하는 것이 중국의 목표다. 계획이 완성되면 중국은 인도양과 남중국해에 닿는 직통 통로를 얻게 된다.
유홍 싱가포르국립대 동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중국-라오스 철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일대일로를 주창한 지 10년 만에 사업이 정상 궤도에 올랐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말했다.
쿤밍-비엔티안 노선의 길이는 1,035㎞로 부산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다. 열차 최고 시속은 160㎞다. 국제 고속열차 기준(시속 200㎞)엔 미치지 못하지만, 보통 열차보다 빠르다는 의미로 현지에선 ‘중국-라오스 고속철도’라고 불린다.
2021년 12월 화물 열차가 운행을 시작했고, 중국의 코로나19 봉쇄가 끝난 올해 4월 여객 열차도 개통되면서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을 수 있게 됐다. 쿤밍과 비엔티안을 자동차로 이동하려면 편도로 사흘이 걸리지만, 열차를 타면 10시간(국경 입국 수속 2시간 포함)이면 된다. 다리 167개를 놓고 터널 75개를 뚫은 결과다.
중국의, 중국에 의한, 중국을 위한 열차
LCR은 ‘중국의, 중국에 의한, 중국을 위한’ 열차였다. 철도역 외관부터 중국풍으로, 중국 자금성을 연상케 했다. 중국 관영 매체 차이나데일리는 “중국 고전 양식에 비엔티안의 환경적 특성을 결합했다”고 소개했다.
선로 규격(1.435m)과 역사 건물 구조 역시 중국 철도 표준을 따랐다. 비엔티안역에서 만난 중국인 링링(28)은 “열차를 이용할 때 중국어만 써도 소통에 지장이 없고, 중국 기차역과 구조가 똑같다"며 "라오스가 아닌 중국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비엔티안에서 출발하는 열차 ‘란창’도 중국 기업이 제작했다.
승무원은 “장거리 승객은 대부분 중국인”이라고 소개했다. 비싼 티켓 가격 때문이다. 라오스인의 한 달 수입은 보통 130~150달러(17~20만 원) 수준인데, 비엔티안에서 북부 도시 루앙남타도 보텐까지의 LCR 편도(400㎞) 요금은 열차 종류에 따라 33~55만 낍(라오스 화폐·2만1,000~3만6,000원)이다. 국경을 넘어 쿤밍까지 가면 135만 낍(약 8만8,000원)으로 뛴다. 왕복 티켓 값이 월급과 맞먹는다.
GDP 65%가 대중국 부채
열차는 라오스의 미래를 싣고 달린다. 철도 건설은 내륙 국가인 라오스를 더 넓은 세계와 연결하고 경제성장을 추동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라오스 정부는 열차 개통으로 수출액이 장기적으로 60% 증가하고 운송비 30~50%를 절감할 것으로 기대한다. 연간 100만 명의 중국 관광객 유입도 희망한다.
그러나 라오스를 파산으로 몰고 가는 급행열차가 될 가능성도 있다. 철도를 놓는 과정에서 중국으로부터 빌린 막대한 자금이 라오스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탓이다. 라오스는 2021년 기준 국내총생산, 국민총소득, 경제성장률 등이 세계 120위권으로 자금을 자체 조달할 여력이 부족하다.
철도 건설엔 59억 달러(약 8조 원)가 투입됐는데, 중국과 라오스가 각각 7대 3의 지분을 보유했다. 라오스 정부가 정확한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외신들은 라오스가 철도 건설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중국 국영은행으로부터 15억4,000만 달러(약 2조 원ㆍ미국 월스트리트저널 추산)에서 19억 달러(약 2조6,000억 원ㆍ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추산)를 빌렸다고 본다.
라오스의 국내총생산(GDP)이 157억 달러(2021년 기준)인 점을 감안하면, GDP의 10%가 넘는 돈을 중국에 빚진 셈이다. 라오스는 지난 20여 년간 수력발전용 댐과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중국에서 막대한 자금을 차입했는데, 부채가 더 쌓이게 됐다. 세계은행은 지난해 기준 라오스의 공공부채가 145억 달러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중국 해외 대출을 추적하는 ‘에이드데이터’는 중국에 갚아야 할 라오스의 국가부채가 GDP의 64.8%에 달한다고 추정하면서 “중국-라오스 철도는 막대한 경제적 실익을 가져오기는커녕 라오스에 거액의 빚만 안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제 발전을 위해 끌어들인 중국 자본이 오히려 성장을 막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잠비아·스리랑카처럼 디폴트 맞을라
라오스에 닥칠 수 있는 최악의 미래는 '동남아시아의 잠비아'가 되는 것이다. 아프리카 내륙 국가인 잠비아는 댐, 철도, 도로 등 인프라 건설을 위해 중국에서 66억 달러를 빌렸다가 2020년 국가 부도 사태를 맞았다. 세계의 무관심 속에 3년이 넘도록 채무재조정 협상을 기다리고 있다.
전체 부채 중 중국 부채 비율이 52%에 이르는 스리랑카도 지난해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했다. 중국에서 자금을 끌어다 남부 함반토타에 대규모 항구를 건설했는데, 빚을 제때 갚지 못해 정부 지분 80%와 99년간의 운영권을 중국에 넘겨야 했다.
라오스에 20년 가까이 산 한국 교민 A씨는 “지난해 물가가 두 배 가까이 뛰었고, 달러 대비 라오스 화폐 가치가 반토막 났다”며 “지난해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국가신용등급을 디폴트 바로 2단계 위(Caa3)까지 내리면서 너도나도 은행으로 달려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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