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훼손 월대, 호암미술관 등서 석재 찾아 복원
15일 '광화문 월대 새길맞이' 행사 개최
현판, 13년 만에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자서 바꿔
과거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임금이 백성과 만나던 '역사의 길' 월대(越臺, 月臺·중요한 건물에 넓게 설치한 대)가 100년 만에 복원돼 일반에 공개됐다. 고증을 거쳐 검정 바탕에 금빛 글자로 바꾼 광화문의 새로운 현판도 모습을 드러냈다.
문화재청은 15일 오후 광화문 광장 및 월대 일대에서 월대와 현판 복원을 기념하는 '광화문 월대 새길맞이’ 행사를 열었다. 행사에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최응천 문화재청장 등 정부 관계자와 오세훈 서울시장, 사전 신청한 국민 500명이 참여했다.
월대는 조선시대 궁궐 등 중요한 건물 앞에 설치된 돌로 만든 넓은 진입로로, 임금과 백성이 직접 소통하는 곳이자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곳이었다. 월대는 세종 당시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나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소실되면서 없어졌다가 1867년 경복궁 중건 당시 광화문과 함께 다시 설치됐다. 일제강점기 광화문 앞에 전차선로가 놓이면서 훼손됐고 1960년대 세종로 지하도를 조성하면서 콘크리트로 메워졌다.
2006년부터 광화문을 복원·정비하는 사업을 꾸준히 추진해 온 문화재청은 지난해 9월 본격적인 월대 발굴 작업을 시작했다. 조사 결과 광화문 월대는 길이 48.7m, 폭 29.7m 규모로 육조 거리를 향해 뻗어 있었다. 중앙 부분에는 너비 약 7m의 어도(御道·임금이 지나도록 만든 길)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전통 재료와 기법을 활용한 온전한 복원에 주력하고 있다고 강조해 왔다. 이 과정에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 회장 유족 측이 어도 앞부분 장식으로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에서 발견된 서수상 2점을 국가에 기증하고, 경기 구리 동구릉에 보관돼 있던 부재 40여 점을 복원에 활용하는 성과가 있었다. 광화문 앞에 있던 해태(해치)상은 논의 끝에 광화문 앞 차로, 월대 앞에 배치하기로 했다.
이날 기념행사에서는 13년 만에 검은색 바탕에 금빛 글자로 새롭게 바뀐 광화문 현판도 함께 공개됐다. 문화재청은 2010년 광복절에 내건 흰색 바탕에 검정 글자로 쓰인 현판이 균열 등 부실 복원 논란이 일자 그해 연말 전격적으로 교체를 결정했다.
새 현판은 경복궁 중건 당시 훈련대장 겸 영건도감 제조(營建都監 提調·조선시대 궁 등의 건축 공사를 관장하던 임시 관서의 직책)였던 임태영이 한자로 쓴 해서체 필적을 복원한 것이다. 당초 문화재청은 기존 색깔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문화재청은 미국 스미스소니언 소장 사진 자료와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남긴 기록인 '영건일기'(營建日記) 등을 토대로 지금의 글씨 색깔로 최종 결정했다. 현판 크기(알판 기준)는 가로 427.6㎝, 세로 113.8㎝로 기존 현판보다 조금 커졌다. 일각에서는 광화문 일대가 외국인도 많이 찾는 명소인 만큼 한글 현판을 내걸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옛 모습대로의 복원을 결정했다.
앞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친 뒤 1968년 복원한 광화문에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친필로 쓴 한글 현판이 걸렸었다. 이후 목재가 아닌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데다 원래 위치를 벗어나 경복궁 중심축에서 틀어질 잘못된 복원이란 지적이 잇따라 광화문 복원사업이 추진되면서 문화재청은 2005년 초 한자 현판으로 이를 교체할 계획을 발표했다. 2006년부터 광화문의 ‘제 모습 찾기’ 사업이 시작돼 2010년 8월 15일 광복절에 기존 현판이 내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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