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중국서 2조원 빌려 건설한 중국-라오스 철도..."빚과 희망 함께 싣고 달린다"[일대일로 10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중국서 2조원 빌려 건설한 중국-라오스 철도..."빚과 희망 함께 싣고 달린다"[일대일로 10년]

입력
2023.10.18 04:30
0 0

[중국 쿤밍-라오스 베인티엔 연결 철도 르포]
차로 사흘 걸리던 길 10시간으로 단축
내륙 국가에서 물류 허브 '연결 국가'로
지난해 라오스 공공부채만 145억 달러

8일 라오스 비엔티안에 위치한 라오스-중국 철도 비엔티안 역사. 중국풍으로 건축됐다. 비엔티안=허경주 특파원

8일 라오스 비엔티안에 위치한 라오스-중국 철도 비엔티안 역사. 중국풍으로 건축됐다. 비엔티안=허경주 특파원

‘란창 열차에 탑승하신 것을 환영합니다(欢迎乘坐澜沧号动车组列车)’

지난 8일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 북동쪽의 라오스-중국 국제여객열차(LCR) 비엔티안역. 중국 쿤밍행 열차에 올라타자 중국어로 쓰인 환영 문구가 승객들을 맞았다. 빨간 티셔츠를 맞춰 입은 중국 단체 관광객들은 객차 내부를 둘러보더니 “티엔나"!(세상에), “타이빵러!"(멋지다)라고 외쳤다. 라오스인 승무원은 승객들의 티켓을 확인한 뒤 유창한 중국어로 “중국 국경을 넘기 전에 라오스 마지막 역인 보텐역에서 모두 내려 입국 수속을 밟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라오스어, 중국어, 영어 순서의 안내 방송이 끝나자 열차는 중국을 향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동남아 연결하는 ‘철(鐵)의 실크로드’

비엔티안과 중국 남부 윈난성 성도인 쿤밍을 연결하는 중국-라오스 철도는 중국이 구상하는 중국 중심의 초대형 경제벨트인 ‘일대일로(一帶一路ㆍ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의 한 구간이다. 지금은 비엔티안까지만 철도가 깔렸지만,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까지 연결될 예정이다. 쿤밍에서 미얀마 양곤을 관통하는 서부선, 쿤밍에서 베트남 하노이와 호찌민을 거쳐 캄보디아로 향하는 동부선 등으로 구성된 범아시아 철도망을 구축하는 것이 중국의 목표다. 계획이 완성되면 중국은 인도양과 남중국해에 닿는 직통 통로를 얻게 된다.

유홍 싱가포르국립대 동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중국-라오스 철도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일대일를 주창한지 10년만에 사업이 정상 궤도에 올랐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말했다.

8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중국 쿤밍행 라오스-중국 열차에 탑승한 승객과 승무원들이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비엔티안=허경주 특파원

8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중국 쿤밍행 라오스-중국 열차에 탑승한 승객과 승무원들이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비엔티안=허경주 특파원

쿤밍-비엔티안 노선의 길이는 1,035㎞로, 부산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거리와 비슷하다. 열차 최고 시속은 160㎞다. 국제 고속열차 기준(시속 200㎞)엔 미치지 못하지만, 보통 열차보다 빠르다는 의미로 현지에선 ‘중국-라오스 고속철도’라고 불린다.

2021년 12월 화물 열차가 운행을 시작했고, 중국의 코로나19 봉쇄가 끝난 올해 4월 여객 열차도 개통되면서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을 수 있게 됐다. 쿤밍과 비엔티안을 자동차로 이동하려면 편도로 사흘이 걸리지만, 열차를 타면 10시간(국경 입국 수속 2시간 포함)이면 된다. 다리 167개를 놓고 터널 75개를 뚫은 결과다.

8일 라오스 비엔티안에 라오스-중국 열차 홍보 표지판이 있다. 비엔티안=허경주 특파원

8일 라오스 비엔티안에 라오스-중국 열차 홍보 표지판이 있다. 비엔티안=허경주 특파원


GDP 65%가 대중국 부채

열차는 라오스의 미래를 싣고 달린다. 철도 건설은 내륙 국가인 라오스를 더 넓은 세계와 연결하고 경제성장을 추동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라오스 정부는 열차 개통으로 수출액이 장기적으로 60% 증가하고 운송비 30~50%를 절감할 것으로 기대한다. 연간 100만 명의 중국 관광객 유입도 희망한다.

8일 라오스 비엔티안에 위치한 라오스-중국 열차 비엔티안역 내부. 중국 본토 역사처럼 매표소와 대합실, 출구가 분리돼 있다. 비엔티안=허경주 특파원

8일 라오스 비엔티안에 위치한 라오스-중국 열차 비엔티안역 내부. 중국 본토 역사처럼 매표소와 대합실, 출구가 분리돼 있다. 비엔티안=허경주 특파원

그러나 라오스를 파산으로 몰고 가는 급행열차가 될 가능성도 있다. 철도를 놓는 과정에서 중국으로부터 빌린 막대한 자금이 라오스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탓이다. 라오스는 2021년 기준 국내총생산, 국민총소득, 경제성장률 등이 세계 120위권으로, 자금을 자체 조달할 여력이 부족하다.

철도 건설엔 59억 달러(약 8조원)가 투입됐는데, 중국과 라오스가 각각 7대 3의 지분을 보유했다. 라오스 정부가 정확한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외신들은 라오스가 철도 건설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중국 국영은행으로부터 15억4,000만 달러(약 2조 원ㆍ미국 월스트리트저널 추산)에서 19억 달러(약 2조6,000억 원ㆍ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추산)를 빌렸다고 본다.

라오스의 국내총생산이 157억 달러(2021년 기준)인 점을 감안하면, GDP의 10%가 넘는 돈을 중국에 빚진 셈이다. 라오스는 지난 20여년 간 수력발전용 댐과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중국에서 막대한 자금을 차입했는데, 부채가 더 쌓인 셈이다. 세계은행은 지난해 기준 라오스의 공공부채가 145억 달러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9일 라오스 북부 루앙남타도 보텐역에서 중국 관광객들이 비엔티안행 열차를 탑승하고 있다. 보텐=허경주 특파원

9일 라오스 북부 루앙남타도 보텐역에서 중국 관광객들이 비엔티안행 열차를 탑승하고 있다. 보텐=허경주 특파원

중국 해외 대출을 추적하는 ‘에이드데이터’는 중국에 갚아야 할 라오스의 국가부채가 GDP의 64.8%에 달한다고 추정하면서 “중국-라오스 철도는 막대한 경제적 실익을 가져오기는커녕 라오스에 거액의 빚만 안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제 발전을 위해 끌어들인 중국 자본이 오히려 성장을 막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잠비아, 스리랑카처럼 디폴트 맞을라

라오스에 닥칠 수 있는 최악의 미래 는 '동남아시아의 잠비아'가 되는 것이다. 아프리카 내륙 국가인 잠비아는 댐, 철도, 도로 등 인프라 건설을 위해 중국에서 66억 달러를 빌렸다가 2020년 국가 부도 사태를 맞았다. 세계의 무관심 속에 3년이 넘도록 채무재조정 협상을 기다리고 있다.

9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승객들이 라오스-중국 열차에서 내린 뒤 역사를 빠져나가고 있다. 비엔티안=허경주 특파원

9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승객들이 라오스-중국 열차에서 내린 뒤 역사를 빠져나가고 있다. 비엔티안=허경주 특파원

전체 부채 중 중국 부채 비율이 52%에 이르는 스리랑카도 지난해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했다. 중국에서 자금을 끌어다 남부 함반토타에 대규모 항구를 건설했는데, 빚을 제때 갚지 못해 정부 지분 80%와 99년 간의 운영권을 중국에 넘겨야 했다.

라오스에 20년 가까이 산 한국 교민 A씨는 “지난해 물가가 두 배 가까이 뛰고 달러 대비 라오스 화폐 가치가 반토막 났다”며 “지난해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국가신용등급을 디폴트 바로 2단계 위(Caa3)까지 내리면서 너도나도 은행으로 달려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비엔티안·보텐(라오스)=글·사진 허경주 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