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 당국이 올해 민간 보호자에게 입양을 보낸 은퇴 구조견 '소백이'가 입양 12일만에 급사하자, 입양 과정상 실수를 덮기 위해 보호자를 속이려 한 정황이 드러났다. 소방 당국이 소백이의 혈액암 발병을 모른 채 입양 보낸 사실을 인정하고 치료를 대신 해준다며, 보호자를 속여 소백이의 소유권을 되가져간 뒤 수액치료만 진행한 것이다. 소방 당국은 이 과정에서 소백이의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보호자에게 치료 후 돌려주겠다며 소유권 포기 서류를 조작하고, 나중에 이를 문제삼은 보호자의 민원은 무시했다.
1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이해식(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소백이(당시 10세∙래브라도 리트리버)는 지난 1월13일 경기 화성시의 한 가정에 입양됐다. 그러나 림프종(혈액암) 진단을 받고, 입양 12일 만인 25일 목숨을 잃었다.
소백이를 입양한 보호자 이씨 등의 진술을 종합하면 소백이는 입양 당일부터 계속 기침을 하다 입양 3일 만인 16일 구토 증상까지 보였다.기침을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일시적 증상이라 판단했던 이씨는 즉시 A 동물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호흡기 질환 약을 처방받은 소백이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고, 이씨는 21일 다시 A 동물병원을 찾았다. 수의사는 소백이의 심각성을 인지해 상급 동물병원으로의 이동을 권했고, 소백이는 B 동물병원에서 검사를 진행했다. 결국 이씨는 ‘소백이가 혈액암 4기로 추정되며,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결과를 받았다. 놀란 이씨는 22일 소백이가 은퇴 직전까지 3년간 중앙119구조대에서 구조활동을 함께 한 핸들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혈액암을 미리 파악하지 못한 채 입양을 보낸 소방 당국은 소백이를 치료조차 제대로 해주지 않고 죽음으로 내몰았다. 중앙119구조대는 23일 "소백이를 가장 잘 아는 핸들러가 곁에 있으면 (소백이가)안정될 것"이라며 이씨로부터 데려가, 대구의 한 2차 동물병원에 입원시켰다. 그러나 소백이는 수액 처치만 받다가 입원 이틀만인 25일, 경북대 동물병원으로 옮겨졌고 이곳에서 폐사했다. 중앙119구조대 관계자는 항의하는 이씨에게 “설 연휴(1월21일~24일) 기간이라 치료를 진행할 수의사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소방 당국은 소백이 보호자를 속이고 서류 조작도 시도했다. 이씨는 서류 조작이 소백이가 폐사하자, 자신에게 입양했던 기록 자체를 소방 당국이 감추려 한 시도라 의심한다. 이씨에 따르면 중앙119구조대는 소백이를 대구로 옮긴 23일, 이씨에게 소백이 치료를 위해 필요하다며 '관리전환 요청서' 작성을 요구했다. 소백이의 소유자가 이씨인 만큼 관리 주체를 소방 당국으로 변경한다는 의미였다. 소백이를 파양하는 것 같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절하는 이씨에게 중앙119구조대는 형식적인 서류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이씨는 관리전환 요청서를 작성했다. 단 요청서에 “소백이와 떨어지고 싶지 않다”며 “파양처럼 소백이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의사도 분명히 명시했다.
이씨가 관리전환 요청서를 작성한 이유는 소방당국과 핸들러를 믿어서였다. 그러나 소백이가 죽자, 이들은 이씨부터 완전히 배제했다. 경남 양산시의 한 반려동물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소백이의 장례식은 모두 소방 당국의 주도로 진행됐다. 중앙119구조대는 서류 작성을 이유로 이씨가 소백이의 유골을 가져가고 싶다는 바람마저 짓밟았다.
이후 소방 당국은 소백이를 이씨에게 돌려주지 않으려 서류 조작까지 시도했다. 당초 소방이 소백이 소유권을 이씨로부터 넘겨받기 위해서는 관리전환 요청서 이외에 '인수인계 확인서'도 갖춰야 했다. 소백이의 관리 뿐 아니라 소유권까지 완전히 넘긴다는 의미의 서류였다. 이 서류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중앙119구조대 관계자는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서류를 임의로 작성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동그람이가 확보한 이씨와 소방 당국 관계자의 통화 녹취록에는 다음과 같은 소방 관계자의 발언이 담겨 있다.
인수인계가 합의됐다는 종이 쪼가리가 하나 필요한데, (중략) 알고 계시라고 전화드리는 거거든요. 그 합의서를 저희가 그냥 작성해서 ‘이제 서로 합의가 되었습니다’하고 자체적으로 한 장 만들어서 올릴 건데 말씀드리고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애초에 파양을 원하지 않았던 이씨는 이 절차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결국 서류 처리를 완료하지 못한 중앙119구조대는 “이씨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보호자가 맞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2월 중순경 소백이의 유골을 이씨에게 넘겼다. 절차를 어기고 무단으로 소백이를 보호자로부터 빼앗아 갔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해당 통화 녹취만으로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설명한다. 동물권 연구 변호사단체 PNR 서국화 대표(법무법인 울림 변호사)는 “사문서 위조 미수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위조한 문서를 직접 행사한 ‘위조사문서 행사’는 실제 행동이 이뤄졌는지 조사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방 당국은 사후 처리를 요구하는 이씨의 민원도 사실상 묵살했다. 그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소백이의 질병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핸들러와 문서 조작을 시도한 소방 당국 관계자 처벌을 요구했다. 그러나 소방 당국은 답변에서 문서 조작 시도를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이씨는 “지난 3월에 민원 답변을 받은 뒤 담당 감사관에게 항의하려 전화를 걸었더니 ‘이 정도(문서 조작) 사안으로 핸들러를 징계할 수 없다’, ‘앞으로 계속 핸들러를 하셔야 할 분들’이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소방 당국은 문서 조작에 대한 소방의 입장을 구두로 전달받았다는 이씨의 주장에 대해 “녹취 등 통화기록을 남기지 않아 확인할 수 없다”고 답했다.
국회의 감사 기록 요청에 대한 답변도 무성의했다. 소방 당국은 이해식 의원실의 문서 조작 시도와 관련한 감사 기록 요청에 “감사를 진행하지 않아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했다. 심지어 소방 당국은 이씨의 민원이 접수될 당시 관계자들에 대한 정식 조사도 실시하지 않았다. 소방 당국은 “소백이의 림프종은 순식간에 상태를 악화시키는 악성 종양”이라며 “질병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 해서 핸들러를 징계할 수 없다”며 소백이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이 의원은 “실질적인 관리체계 부재를 넘어 문서 조작 시도 정황까지 포착된 것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며 “앞으로 이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조사와 근본적 해결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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