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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6기 있는데 2기 더 짓는 게 뭔 대수"… 신규 원전 유치 괜찮다는 동해안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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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6기 있는데 2기 더 짓는 게 뭔 대수"… 신규 원전 유치 괜찮다는 동해안 주민들

입력
2023.10.1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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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군 주민 신규 원전 유치 활동 본격화
"대규모 지원금, 일자리 창출" 기대 반응
탈핵단체, 원전 밀집 중대사고 우려 반대
"지역 발전 달콤한 사탕 현혹되면 안 돼"

울산 울주군 서생면 21개 마을 이장단이 5일 울주군청에서 신규 원전 유치 희망 의사를 밝히고 있다. 울산=박은경 기자

울산 울주군 서생면 21개 마을 이장단이 5일 울주군청에서 신규 원전 유치 희망 의사를 밝히고 있다. 울산=박은경 기자

“이런 촌에 학교도 더 좋게 지어 준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뭐 있노? 있는 학교도 없애는 판에…”

5일 오후,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리마을. 이제 막 물질을 마치고 나온 해녀들에게 신규 원전 유치에 대한 생각을 묻자 잠수복을 털어 널던 장금자(72)씨가 더 물을 것도 없다는 듯 답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는 그는 “원전이 생긴 후 동네 편의시설도 많아지고 훨씬 살기 좋아졌다”며 “원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서생중학교만 해도 동네 시골학교에서 전국구 학교가 됐다”고 자랑했다. 다른 해녀들도 “가만두면 사라질지도 모르는 마을에 기회가 온 것”이라며 “나이가 들어 물질도 앞으로 길어야 5년인데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거들었다.

어업인들도 '조건부 찬성'

12일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울산 울주군, 경북 영덕군 등 농어촌을 중심으로 원전 유치 활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정부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4~2038년) 수립과정에 신규 원전 최대 6기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주민들은 원전 건설 시 풀리는 대규모 지원금을 바탕으로 한 일자리 창출과 인구 유입 등을 기대하고 있다. 반면, 탈핵단체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앞으로 지역 주민들과 갈등이 예상된다.

원전 유치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울주군 서생면이다. 서생면 21개 마을 이장단은 5일 관내 19세 이상 유권자(7,622명) 절반이 넘는 4,042명의 서명이 담긴 원전 자율유치 서명부를 울주군에 전달했다. 서생면엔 현재 2016년과 2019년에 각각 준공한 새울 1, 2호기(구 신고리 3, 4호기)가 가동되고 있고, 새울 3, 4호기(구 신고리 5, 6호기)도 건설 중이다. 여기에 2기를 더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자율유치 명부에 이름을 올린 한 주민은 “코앞 기장군에 있는 신고리 1, 2호기까지 합치면 이미 6기가 들어서 있는 셈인데 2기 더 짓는 게 별일이냐”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간 반대 의사를 표명했던 울주군어업인연합회도 한발 물러섰다. 이들은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열고 “직접적 피해자인 어업인의 의사를 묻지 않고 유치를 추진해 절차적으로 부당하다는 것이지 원전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며 생존권 보장을 전제로 한 ‘조건부 찬성’을 천명했다.

울산 울주군 서생면 새울원전 인근에 5일 새울 5, 6호기 유치를 찬성하는 현수막이 줄지어 걸려있다. 울산= 박은경 기자

울산 울주군 서생면 새울원전 인근에 5일 새울 5, 6호기 유치를 찬성하는 현수막이 줄지어 걸려있다. 울산= 박은경 기자

주민들이 기피 시설인 원전 건설에 앞장서는 건 막대한 보상이 뒤따라서다.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원전 자율 유치 시 건설비의 최대 0.5%가 특별지원금(건설비의 최대 1.5%)에 가산된다. 앞서 자율 유치한 새울 3, 4호기에 책정된 특별지원금은 1,182억 원. 원전 운영기간 동안 발전량에 따라 지자체와 주민에게 지원되는 기본지원사업비, 사업자지원사업비, 지역자원시설세 등을 감안하면 60년 운영 기준 경제적 효과는 3조9,000억 원에 이른다. 임영환(59) 서생면 주민 대표는 “원전 건설 인력의 30%가 지역민”이라며 “지원금도 지원금이지만 일자리를 찾아 타 시군으로 떠나는 사람이 줄어드니 마을에 생기가 돈다”고 말했다.

"이미 울산시청 반경 24km에 16기"

탈핵단체들은 정부의 신규 원전 건설 방침에 거센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 탈핵시민행동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수명 만료 고리 2호기 폐쇄 촉구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뉴스1

탈핵단체들은 정부의 신규 원전 건설 방침에 거센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 탈핵시민행동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수명 만료 고리 2호기 폐쇄 촉구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뉴스1

그러나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원전 유치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거세다. 원전이 밀집할수록 중대사고로 인한 위험도 덩달아 커지는 탓이다. 울산 57개 시민단체가 모인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은 “돈과 일자리,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달콤한 사탕에 현혹되면 안 된다”며 “이미 울산시청 반경 24km 안에 원전 16기가 있다. 시민 안전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해안에 부쩍 잦아진 지진도 원전 안전에 대한 우려를 키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최근 10년간 국지성 폭우, 태풍, 지진 등 자연재해로 인한 원전 정지 일수는 461.1일이다. 특히 가동이 중단된 원전은 월성, 고리, 신고리 등 모두 동해안에 몰려있다. 고리ㆍ월성 원전 주변에선 규모 6.5 이상 강진이 일어날 수 있는 활성단층 5개가 확인되기도 했다. 지난 4~6월 동해안에서 발생한 지진만 232회다. 용석록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대외협력국장은 “기후위기로 인한 대형 산불과 태풍, 올해 초 발표된 한반도 동남권 활성단층의 존재 등 총체적 위협 속에서 신규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불쏘시개를 들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라며 “사생결단으로 막아내겠다”고 강조했다.

울산=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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