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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빛낸 ‘홍콩의 별’

입력
2023.10.09 18:0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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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홍콩 배우 저우룬파(왼쪽부터)와 아내 재스민 탄이 지난 4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에서 송강호와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홍콩 배우 저우룬파(왼쪽부터)와 아내 재스민 탄이 지난 4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에서 송강호와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두 배우가 껴안았다. 관객 5,000명가량이 환호성을 질렀다. 지난 4일 오후 개막식에서 홍콩 배우 저우룬파(周潤發ㆍ주윤발)와 한국배우 송강호가 마주한 장면은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주요 장면 중 하나였다. 저우룬파는 홍콩 영화를 세계에 널리 알렸던 전설적 배우다. 송강호는 ‘기생충’(2019)으로 세계적 배우가 됐고, 지난해에는 ‘브로커’로 칸국제영화제 남자배우상을 한국 최초로 받았다. 아시아 영화의 과거와 현재를 각기 대표하는 두 배우의 조우는 여러 생각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 홍콩 영화는 1960년대부터 전성기를 누렸다. 1980년대가 황금기로 꼽힌다. 영화사 쇼브러더스가 견인차 역할을 했다. 싱가포르에 거점을 둔 이 회사는 1958년 홍콩 영화 산업에 진출했다. 쇼브러더스는 홍콩 밖 거대한 화교 네트워크를 주목했다. 방언 광둥어 영화가 주류이던 홍콩에서 표준 중국어로 영화를 만들었다. ‘세계화’ 전략은 성공했다. 홍콩 영화는 자본 축적을 통해 아시아 시장을 호령했다. 쇼브러더스는 1,600명이 근무하는 거대 스튜디오로 거듭났다.

□ 1960~70년대 쿵후 영화로 재미를 봤던 홍콩 영화는 80년대 홍콩 누아르로 한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저우룬파와 장궈롱(張國榮ㆍ장국영)이 주연한 ‘영웅본색’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류더화(劉德華ㆍ유덕화)와 량차오웨이(梁朝偉ㆍ양조위) 등 여러 홍콩 스타들이 사랑받았다. 1980~90년대 한국에서 홍콩 노래를 듣고 홍콩 영화를 보는 건 당연하게 여겨졌다. 2000년대 들어 홍콩 영화는 몰락했다. 날림 제작과 자기 복제가 원인으로 지적되나 홍콩 영화의 오랜 특징이라 설득력이 떨어진다.

□ 저우룬파는 5일 기자회견에서 1997년 홍콩 반환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중국 당국이 심의 등 여러 제재를 가해 영화를 자유롭게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영화의 성장은 큰 창작 자유도 덕”이라고 덧붙였다. ‘홍콩 정신’으로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소신 발언도 했는데 과연 가능한 일일까. 홍콩의 별 저우룬파는 부산영화제를 밝혔으나 황혼의 빛과 비슷했다. 20~30년 후에도 한국이 아시아 영화의 현재를 대표한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부산=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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