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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를 비틀면 코피가 난다

입력
2023.10.09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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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편집자주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면 신발 끈을 묶는 아침. 바쁨과 경쟁으로 다급해지는 마음을 성인들과 선현들의 따뜻하고 심오한 깨달음으로 달래 본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우유를 저으면 버터가 된다.' 버터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설명서에도 등장하기 어려울 것 같은 단순한 문장이 성경에 나와 있다. 성철 스님이 남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를 연상케 한다. 둘 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둘 다 남기는 여운은 길다.

더없이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이치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고,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마땅한 현상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글이 성경의 잠언에서는 자주 등장한다. 잠언은 특히나 인기가 많은데, 그래도 이런 표현들은 독자의 기억에서 쉽게 증발하기 일쑤다. 사람의 읽기가 매우 편향적이어서, 마음에 직접적인 감동을 주거나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무언가를 기대하며 성경을 읽기 때문이다. 퇴직 후 사업이라도 시작하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구절에 눈이 번쩍이기 마련이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잠언 16:3)

사실 잠언에는 세상의 보편적인 원리를 그저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이 많다. 아무리 읽어도 머릿속에 잘 남지는 않았겠지만, 잠언 애독자는 분명히 다음 구절도 수십 번 보았을 것이다. "눈짓을 하는 사람은 그릇된 일을 꾀하고"(잠언 16:30). 눈짓을 하는 것이 무엇일까? 원어나 다른 번역을 살펴보면, 눈짓이란 쉬운 말로 '윙크'를 가리킨다. 윙크를 남발하는 사람은 엉큼한 일을 많이 꾸민다는 것이다. 이렇게나 친절한 인생 지침이 성경에도 등장하니까, 다들 느끼한 남자는 주의하시기 바란다.

잠언은 종교적인 권면 말고도 일상의 운행을 관찰하여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전한다. 재미나는 예를 한번 보자. 3,000년 전 예루살렘에서도 21세기 서울에서도, 자기 돈으로 물건을 사는 사람의 심리는 변치 않고 똑같다는 것이 다음 글을 통해 증명됐다. "물건을 고를 때는 '나쁘다, 나쁘다' 하지만, 사 간 다음에는 잘 샀다고 자랑한다."(잠언 20:14)

소소한 관찰이지만 그래서 무섭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우유를 저으면 버터가 되듯, 일상의 원리는 참으로 변치 않는 사실이고 진리이기 때문이다. 불필요하게 사람 마음에 감동을 주려 하지 않아도 된다. 억만 년간 변치 않는 가치중립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통계적으로 피할 수 없을 만큼 진리이다. 그래서 다음의 잠언 구절을 눈 크게 뜨고 읽어 보자.

"우유를 저으면 버터가 되고 코를 비틀면 피가 나는 것처럼, 분노를 일으키면 다툼이 생긴다."(잠언 30:33) 서로를 존중하면 협의지만, 서로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분쟁뿐이다. 친구 사이 가족 사이 동료 사이 지역 사이 나라 사이 종교 사이 어디에서도 불변의 진리다.

인문산책 기민석.

인문산책 기민석.


기민석 목사·한국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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