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 보선 현장, 안전은 뒷전]
어린이보호구역 현수막 금지에도
상당수 학교, 무분별 설치 골머리
"2m 이상 높이 설치" 규정도 위반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된 6일 오전 강서구 방화동의 한 초등학교 앞. 학교 주변에는 선거에 나선 여야 후보들의 한 표를 부탁하는 홍보 현수막 4개가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을 점령하고 있었다.
안전펜스 바로 위에 설치된 현수막은 키가 작은 아이들과 운전자에겐 사실상 '가림막'이나 다름없었다. 등교하는 학생들이 도로에 차가 지나가는지, 신호등은 무슨 색인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야를 가로막았다. 운전자들도 언제, 어디서 아이들이 튀어나올지 몰라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김모(12)군은 "펜스와 현수막 사이 간격이 좁아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도로 옆에 있는 안전 울타리 바로 위에 현수막을 설치해 놓으니 반대편에서 누가 길을 지나가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 보궐선거는 강서구청장 한 곳만 열리지만, 스쿨존에 난립하는 정당현수막의 폐해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당국의 가이드라인도 법적 구속력이 없어 아이들의 안전을 담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날 취재진이 강서구 관내 초등학교 35곳의 스쿨존을 전수 조사한 결과에서도 무려 10곳이 현수막 설치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 스쿨존 내 정당현수막 설치를 금지하는 지침을 피해 보호구역이 해제되는 지점 바로 앞에 설치하는 꼼수가 다수 목격됐다. '2m 이상 높이에 설치', '가로수 하나당 2개 이하 설치' 등의 규정을 위반한 곳은 부지기수였다.
정당들은 관심을 끌 목적으로 현수막을 되도록 낮게 설치하지만, 이 경우 운전자가 어린이 보행자를 인지하지 못할 수 있어 위험천만하다. 심지어 현수막이 스쿨존 인근 펜스와 거의 붙어 설치돼 신호등이 아예 보이지 않는 곳도 있었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비판 일색이다. 전모(12)군은 "현수막이 너무 많아 주변을 잘 살피지 못하고, 학교를 오가는 데도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다"라고 말했다. 학부모 최혜정(49)씨도 "유치원, 저학년 어린이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라 교통사고가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학교 측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안전지킴이로 활동하는 이모(62)씨는 "한 달 전쯤 학교 정문 앞에까지 현수막을 설치해 신고한 적도 있다"고 귀띔했다.
정당현수막은 지난해 12월 옥외광고물법이 개정되면서 급격히 늘었다. 개정법은 정당활동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정당현수막에 설치 장소 제한 등을 적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공해 수준으로 폭증한 정당현수막은 수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각종 지침 위반으로 8건의 안전사고가 발생했다. 법 시행 전과 비교해 관련 민원이 2배 넘게 증가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지방자치단체도 단속에 나서지만 힘이 부친다. 강서구청 관계자는 "대로변뿐 아니라 이면도로 등 현수막이 없는 곳이 드물어 현황 파악조차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당현수막의 폐단이 명백히 드러난 만큼 강제성을 지닌 대책 마련이 늦어질수록 개정 법안의 순기능도 상쇄될 것이란 지적이 많다. 하혜수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무분별하게 설치된 정당현수막은 시민들에게 불쾌감만 주고 미관을 해칠 가능성이 크다"며 "필요성을 따진 공익적 목적의 규제가 나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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