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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부터 확보하라"...범죄 피해자들이 직접 쓴 매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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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부터 확보하라"...범죄 피해자들이 직접 쓴 매뉴얼

입력
2023.10.08 07:00
수정
2023.10.08 11:20
5면
0 0

사실 확인서·가명조서 활용해야
성범죄 의심 땐 DNA 채취 요청

범죄피해자연대가 작성한 '범죄피해를 당했을 때 폐쇄회로(CC)TV 증거 영상 확보하는 법'. 원다라 기자

범죄피해자연대가 작성한 '범죄피해를 당했을 때 폐쇄회로(CC)TV 증거 영상 확보하는 법'. 원다라 기자

범죄피해자연대(가칭 경험자들)는 가장 먼저 '범죄 피해자 대응 매뉴얼'을 별도로 만들기로 했다. 정부에서 범죄 피해자들에게 제공하는 안내문이 있지만 부실하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지적이었다. 또 피해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다른 범죄 피해자에게 전하고 싶은 편지를 공개했다.

피해 사실 기록하고, CCTV 등 증거 확보해야

이들이 작성한 매뉴얼에 따르면 범죄 직후 가장 먼저 피해 사실을 기록해야 한다.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를 정리한 '사건 일지'를 만든 후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 증거 확보도 중요하다. 피해를 입증할 휴대폰 기록과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CCTV 영상은 관리주체가 제각각인 데다 보관기관도 짧게는 2주, 길어야 30일이어서 가능한 한 빠르게 확보해야 한다.

CCTV 영상을 확보할 때는 경찰서에서 발급해 주는 '사건사고사실 확인원'을 지참하는 게 좋다. 또 피해자가 직접 가지 못할 때는 가족관계증명서와 신분증 등을 챙겨 가족이 대신 영상을 요청하는 것도 방법이다. CCTV 관리주체가 상업시설인 경우에는 해당 시설 이용시간과 구매 영수증 등을 챙겨야 도움을 받기 용이하다. 확보한 영상을 사용할 때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다른 사람들의 정보가 식별되지 않도록 처리해야 한다. 성범죄 가능성이 있다면 유전자(DNA)를 채취할 수 있는 증거도 확보해 둬야 한다.

'바리캉 폭행남 사건' 피해자 부모가 2일 한국일보 인터뷰에 가져온 '가족이 범죄 피해를 당했을때 확인해야 할 것들' 체크리스트. 원다라기자

'바리캉 폭행남 사건' 피해자 부모가 2일 한국일보 인터뷰에 가져온 '가족이 범죄 피해를 당했을때 확인해야 할 것들' 체크리스트. 원다라기자


가명 조사도 가능·수사 이의 신청할 수도


매뉴얼에 따르면 경찰 조사나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정보가 노출되는 문제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경찰 조사 때 이름, 집 주소, 직장 등을 기재하는 실명 방식 대신 신원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 가명 조서 작성을 요구하면 된다.

경찰 수사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 이의신청하는 법도 소개했다. 매뉴얼에 따르면 △국민신문고 △인권위원회 △권익위원회 △경찰서 청문감사관실 등을 통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범죄 사실이 명백한 경우엔 경찰관에게 바로 범죄 장소 압수수색을 요청할 수도 있다. 경찰·검찰·법원 사건번호를 각각 기록해 수시로 사건기록을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각 검찰청 산하 범죄피해자지원센터 등을 통해 의료비와 생활비 등 구조금을 신청하는 방법도 있다. 특히 사건이 집이나 인근에서 발생했을 경우 주민센터와 한국토지주택공사, 관할 경찰서에 문의해 임시 숙소를 지원받을 수 있다.

'부산 돌려차기 강간 살인 미수 사건' 피해자가 다른 범죄 피해자에게 쓴 편지. 원다라 기자

'부산 돌려차기 강간 살인 미수 사건' 피해자가 다른 범죄 피해자에게 쓴 편지. 원다라 기자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범죄 피해자들은 다른 피해자들을 향해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도 남겼다. 부산 돌려차기 강간 살인 미수 사건 피해자는 편지에서 "가장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무슨 상황이었든 무슨 범죄였든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로지 가해자의 잘못입니다. 범죄 피해를 입은 후엔 두 가지 방향이 있어요. ①이 사건을 잊고 또 다른 멋진 인생을 살아 보는 것. ②사건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 어떤 방향이든 잘못된 선택이 아닙니다. 미래에도 그 방향을 선택한 나를 존중해 주세요. 주변에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들에게 도와달라고 손을 내미는 거예요"라고 전했다.

인천 스토킹 살인 사건 유족들도 "이번 일로 어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후회와 공포와 불안이 왜 남은 가족의 몫인지 슬프기도, 화나기도, 자책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절대 피해자가 느껴야 할 감정이 아닌, 가해자가 느껴야 할 감정입니다"라고 당부했다.


원다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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