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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사람이 되렵니다"... 치솟는 OTT 요금에 '꼼수' 내몰리는 소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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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사람이 되렵니다"... 치솟는 OTT 요금에 '꼼수' 내몰리는 소비자들

입력
2023.10.04 04:30
수정
2023.10.04 08:08
10면
0 0

10~30대에서 '구독 대행업체' 인기
약관 위반 알지만 요금 부담이 더 커
"글로벌 OTT의 차별 정책 개선해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토종 한국인 박모(26)씨는 유튜브에서만은 '필리핀인'으로 통한다. 그는 최근 필리핀 어느 도시에 사는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가족이 됐다. 아마 그의 '유튜브 식구들'도 필리핀은 근처도 안 가본 한국인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가 국적 세탁까지 하며 온라인에서 '필리핀인 행세'를 하는 이유는 오로지 한 가지. 유튜브 프리미엄 구독료를 덜 내기 위해, 대행업체의 '편법 공유 계정'을 구매한 것이다. 박씨는 "국적을 바꾼 덕분에 한 달에 총 4만 원 가까이 내던 구독료를 크게 줄였다"면서 "다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구독에도 비슷한 방법이 있는지 알아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선 불가능한 'OTT 결합 할인'을, 다른 나라 계정을 이용해 편법 제공하는 대행업체들이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동안 개별 이용자가 구독료나 소프트웨어 구매비를 줄이기 위해 국적을 변경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이제는 OTT가 보편화하면서 편법 계정 사업이 하나의 시장으로까지 자리매김하게 됐다. 언뜻 보기엔 이용자들의 규정 위반이 문제지만, 국가에 따라 요금을 차별적으로 부과하면서 특정국에서 가격을 지나치게 올리는 OTT 사업자들의 요금 정책이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젊은 층에서 인기 끄는 '우회 구독'

3일 네이버 쇼핑에 따르면, '유튜브 프리미엄'은 이달 1일 10~30대 남성들이 가장 많이 구매하거나 조회한 상품 1위를 기록했다. 10대와 20대 여성 사이에선 각각 3위와 2위를 차지했다. 유튜브 프리미엄 정식 상품을 결제하려면 유튜브를 통하면 그만인데, 포털사이트를 검색했다는 것은 우회 경로를 통해 구독 상품을 찾으려는 수요가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독 대행업체를 통해 유튜브 프리미엄 가족 결합 서비스를 이용했을 때 나타나는 화면.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구독 대행업체를 통해 유튜브 프리미엄 가족 결합 서비스를 이용했을 때 나타나는 화면.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유튜브 프리미엄은 월 1만450~1만4,000원을 내고 △광고 없애기 △영상 다운로드 △유튜브 뮤직 등 이용이 가능한 유료 서비스다. 외국엔 식구끼리 아이디(ID) 공유를 허용하는 '가족 결합' 상품도 있지만, 한국엔 출시되지 않아 결합 할인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대행업체들은 가상사설망(VPN)으로 우회 접속 계정을 만든 뒤, 국내 이용자들을 '가짜 외국인 가족'으로 묶는다. 여럿이 함께 지불하니 구독료는 네다섯 명이 한 가족인 경우 한 달에 2,500원 수준으로 떨어진다.

물론 이런 결합은 약관 위반이다. 유튜브는 국적 변경을 허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공식 경로가 아닌 방법으로 유료 서비스를 사용하면 계정 접속을 차단시키고 있다. 실제 국내 이용자들 사이에서 인도나 아르헨티나 등을 통한 우회 접속이 성행하자, 접속이 막힌 경우도 있었다. 한 대행업체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사기를 당해도 신고가 쉽지 않다는 점을 노려 업체들이 '먹튀'를 하는 곳도 있다"고 귀띔했다.

구독료, 한국은 특히나 비싸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소비자들도 이를 모르지 않지만, '스트림플레이션'(스트리밍+인플레이션) 부담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디즈니플러스는 다음 달 기존 멤버십 가격을 40% 넘게 올리고, 넷플릭스는 최근 세계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단행한 가격 인하 조치에서 한국 등을 제외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OTT에 한 달 1만5,000원 이상 내는 이용자는 2021년 9.5%에서 지난해 14.9%로 늘었다.

편법 계정 일상화를 소비자 문제로만 치부할 게 아니라, 국가별로 천양지차인 요금 체계를 개선하는 게 우선이라는 목소리도 크다. 한국 등 일부 국가에서 비싼 요금제를 강제하는 글로벌 OTT의 처사가 편법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지난해 10월 "경제 규모가 비슷한 국가들과 비교해도, 한국 소비자만 홀대받고 불편한 소비환경을 감수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구글(유튜브 사업자)이 명확한 이유 없이 서비스를 차등 제공하는 건 소비자 주권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OTT 시장의 성장이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만큼 다양한 선택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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