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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소송 중 집에 짐 챙기러 간 남편... '주거침입죄' 성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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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소송 중 집에 짐 챙기러 간 남편... '주거침입죄' 성립할까

입력
2023.10.03 16:00
수정
2023.10.03 17:36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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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함께 살던 집… 비밀번호도 그대로
집에 갔더니 아내가 경찰관과 들이닥쳐
검사는 주거침입 인정해 기소유예 처분
헌재 "자의적 검찰권"… 기소유예 취소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함께 살던 집이었어요. 거기서 짐을 챙겨 나오려던 것뿐인데, 주거침입죄라뇨."

2021년 11월 이혼 소송 중이던 김모씨는 수원지검 안산지청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기소유예는 혐의가 인정되지만 여러 사유를 참작해 처벌은 하지 않는 검사의 처분이다. 재판도 받지 않고 전과(범죄경력) 기록도 남지 않는다지만, 어쨌든 죄를 저지르긴 했다는 뜻이다.

김씨는 억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남의 집도 아니고 멀쩡히 내가 수년간 살던 집에 들어가 짐을 챙겨 나오려고 한 것뿐인데, 주거침입죄라니. 그것도 아내가 없을 때를 골라서 집에 들어간 것이었다. 도어록 비밀번호도 바뀌지 않은 상태였다.

김씨는 두 달 전(2021년 9월) 집에 들어가 있던 그의 앞에 아내가 경찰을 대동하고 나타난 때를 떠올렸다. 아내가 2주 전쯤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말하긴 했지만, 코로나에 걸렸다는 이유를 댔기 때문에 자가격리 기간이 끝났을 즈음 들어가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석 달 전부터 아내가 청구한 이혼 소송이 진행 중이긴 했지만, 아직 부부의 연이 끊어진 것도 아니고 여전히 그 집엔 그의 짐이 남아 있었다.

검사에게 이런 사정을 적극적으로 설명했지만, 검사는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게 아니라 유죄를 전제로 한 기소유예를 결정했다. 비록 형사처벌은 면하지만 유죄 판단으로 민사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고, 전과는 남지 않지만 수사경력 자료가 수사기관에 일정 기간 보존돼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김씨는 헌법재판소에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기소유예를 취소하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헌재에 헌법소원을 내는 것이다.

헌재는 검찰과 다르게 판단했다. 김씨가 아내와 10년 넘게 결혼생활을 유지해 왔고, 아내 명의 주택이지만 2013년부터 별다른 수입이 없던 아내에게 김씨가 꾸준히 돈을 보내주는 등 매매대금을 마련하는 데 상당 부분 기여한 점을 감안했다. 그래서 김씨도 해당 주택에서 공동거주자 지위에 있다고 봤다. 김씨가 다른 지역에서 일하면서도 휴일엔 이 집에 머물렀고, 이혼소송이 시작된 후에도 휴가를 집에서 보낸 점 등 또한 참작했다.

헌재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혼을 청구했다거나 주택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는 이유만으론 부부관계를 청산하거나 김씨가 집에 살지 않기로 한 명시적 합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김씨가 공동거주자의 지위에서 이탈했거나 배제됐다고 볼 만한 사정도 없다"고 결론 냈다. 대법원 판례상 공동거주자는 주거지에 임의로 출입해도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김씨가 '주거의 평온'을 해쳤는지도 쟁점이 됐다. 헌재는 "비밀번호는 공동거주자로서 자연스럽게 알고 있던 것일 뿐, 불법적이거나 은밀한 방법으로 취득한 게 아니다"라고 짚었다. 이어 "한동안 집에 머무르다가 경찰과 아내가 오자 안에서 문을 열어줬는데, 이런 행동을 보면 (아내의) 주거 평온을 해치는 '침입'이라 평가하긴 어렵다"고 했다.

결국 헌재는 지난달 26일 김씨의 청구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했다. 주거침입 혐의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단 점에서 김씨를 무혐의로 본 것이다. 헌재는 "검찰이 자의적 검찰권 행사로 김씨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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