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보리, 다국적 안보 결의안 채택
케냐 '경찰 1000명', 미국 '2억 달러' 지원
"케냐 국가 폭력·국제 개입 적절성 논란"
유엔이 갱단 간 무력 충돌 등으로 사실상 무정부 상태인 카리브해 국가 아이티에 ‘다국적 경찰’을 파견하기로 했다. 날마다 수십 명이 참혹하게 살해·납치·성폭행을 당하는 극심한 고통에 빠진 최빈국에 날아든 희소식이다. 그러나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지원 규모나 방식 등이 모호한 탓에 또 다른 혼란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케냐 경찰 1000명 지원한다는데…
2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이날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회의를 열고 아이티를 대상으로 한 다국적 안보 결의안을 채택했다. 핵심 내용은 아프리카 국가 케냐가 아이티에 경찰 1,000명을 파견, 공항·항만·학교·병원 등 주요 시설을 지키도록 한 것이다. 아이티 인접국 바하마도 150명 지원 의사를 밝혔고, 자메이카·바베이도스 등 12개국의 참여도 예상된다. 미국은 병력 지원 없이 최대 2만 달러 규모의 장비를 보내기로 했다.
장 빅토르 제네우스 아이티 외무장관은 “이번 결의안은 오랫동안 고통받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이라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상임이사국 간 반목이 계속되던 상황에서, 결의안 통과는 안보리가 행동에 나선 드문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아이티 안팎에선 벌써부터 우려의 시선이 나온다. 특히 다국적 경찰단의 핵심인 케냐 경찰을 두고 ‘국가 폭력 수출’이라는 비판이 많다. 국제인권단체 ‘미싱 보이스’는 케냐 경찰에 대해 “2017년 이후 자국민 약 1,350명을 초법적으로 살해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올해 8월에도 케냐 경찰은 생활비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대 35명을 상대로 총격을 가했다. 또 유엔군사령부가 책임을 맡는 유엔 평화유지군과 달리, 다국적 경찰단은 이번 파견을 주도한 케냐가 감독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도 불안 요소다.
국제앰네스티 케냐 지부의 이룽구 휴튼 이사는 영국 가디언에 “(케냐 경찰의) 폭력은 실질적 우려사항”이라고 말했다. 갱단을 진압하기엔 지원 규모가 너무 적고, 세부 계획이 헐겁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구체적인 병력 규모나 배치 시기, 교전 규칙, 출구 전략 등 세부 사항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짚었다.
'국제 개입' 또 다른 비극 되진 않을까
당초 미국은 캐나다가 이번 임무를 주도하길 원했다. 그러나 캐나다 등 선진국들은 참여를 꺼렸다. 2004년 아이티에 파견됐던 유엔군의 처참한 실패 탓이다. 국정 정상화를 도와야 했던 유엔군은 성폭행을 암암리에 저질렀다. 아이티엔 없던 풍토병 콜레라를 창궐시켜 최소 9,000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유엔군은 결국 2017년 철수했다.
게다가 아이티의 비참한 현실을 만든 근본 원인은 서구 열강의 개입이었다. 아이티는 18, 19세기 프랑스의 식민 지배, 20세기 미국 군정 통치를 겪으며 정치·경제적으로 망가졌다. 미국 아이티정의민주주의연구소의 알렉산드라 필리포바 선임 변호사는 “역사적으로 국제 개입은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말했다. 아이티계 미국인 단체 2곳도 미국 정부에 “국제사회의 개입이 지금의 정치적 위기를 재앙으로 악화시킬 것”이라고 적은 서한을 보냈다.
그럼에도 극심한 치안 불안을 겪는 아이티로선 다른 방법이 없다. 지난 1월부터 8개월간 갱단에 의해 살해된 사람만 최소 2,400명이다. 인구 절반인 490만 명은 식량 위기에 처했다. 2021년 조브넬 모이즈 당시 대통령이 암살당한 뒤, 갱단 난립으로 초래된 무정부 상태는 2년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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