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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취관리 6년째인데 민원 최다... 제주 양돈업계 향한 뿌리 깊은 불신

입력
2023.10.05 14:0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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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양돈단지 인근 주민 그룹 인터뷰]
2017년 축산폐수 무단 방류 사태 후
양돈농가 40% 악취관리지 지정에도
주민-농장 간 좁혀지지 않는 거리

편집자주

전국 곳곳에서 '후각을 자극해 혐오감을 주는 냄새', 즉 악취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악취 민원은 무수히 쌓이는데 제대로 된 해법은 요원합니다. 한국일보는 16만 건에 달하는 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국내 실태 및 해외 선진 악취관리현장을 살펴보고, 전문가가 제시하는 출구전략까지 담은 기획 시리즈를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강명수 대한한돈협회 제주도협의회 사무국장이 지난달 12일 제주 제주시 노형동 협회 사무실에서 양돈농장이 몰려있는 제주 북서부 지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제주=이현주 기자

강명수 대한한돈협회 제주도협의회 사무국장이 지난달 12일 제주 제주시 노형동 협회 사무실에서 양돈농장이 몰려있는 제주 북서부 지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제주=이현주 기자

최진숙(63·가명·여)씨는 2017년 발생했던 이른바 '숨골 사태'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제주 수사당국이 축산폐수 수백 톤(t)을 숨골에 무단 방류한 양돈업자들을 적발하면서 도 전체에 파문이 일었기 때문이다. 숨골은 지표면의 물이 지하수로 들어가는 구멍을 뜻하는 말로, 이렇게 흘러든 물은 지하수의 원천이 된다. 당시 양돈업자들이 방류한 축산폐수는 2리터짜리 생수 18만 병에 이르는 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도 양돈단지와 가까이에 살고 있는 최씨는 발원지가 양돈농장으로 의심되는 냄새가 날 때마다 "'또 비양심적인 양돈업자 행태구나'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그는 "숨골 사태 때문에 양돈업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완전히 각인됐다"고 덧붙였다.

제주도는 이후 양돈업계에 메스를 들이댔다. 가축분뇨 불법 배출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했던 악취 문제도 수술대에 올랐다. 2018년부터 3년간 103개 농가를 악취관리지역으로 지정했는데, 이는 제주도 전체 양돈농가의 40%에 해당한다. 악취관리지역으로 지정되면 6개월 이내 악취방지계획서를 내거나, 악취가 배출허용기준치 이하로 배출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관광객, 외지인 많아진 탓일까

문제는 악취관리지역 지정 이후에도 악취 민원이 여전히 많다는 점이다. 2018년 1월~2023년 상반기까지 전국 모든 기초자치단체 및 세종특별자치시가 접수한 악취 의심지역 민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기초자치단체 중 가장 많은 민원이 접수된 곳은 5,268건으로 제주시였다. 특히 애월읍은 제주시 민원의 25.6%(1,348건)를 차지했고, 광령양돈단지가 있는 광령리에서 '축산악취 고충'과 관련된 민원이 794건 접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 애월읍 악취의심지역 민원 건수 추이. 그래픽=송정근 기자

제주 애월읍 악취의심지역 민원 건수 추이. 그래픽=송정근 기자


제주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 악취 문제와 관련된 지역적 특성이 매우 뚜렷한 편이다. 우선 1990년대 정책적으로 소규모 양돈농장을 모아서 단지화했다. 제주도 서북부에 양돈농장 밀집 지역이 많은 이유다. 또 바람이 많은 기후 특성 때문에 냄새가 멀리 퍼지기 쉽다. 관광객이나 외지인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악취와의 접점도 늘었다. 대표적인 양돈밀집지역인 애월읍 인구는 지난해 기준 3만7,697명으로, 2014년 2만9,613명에서 꾸준히 증가했다.

제주시 애월읍 인구 변화. 그래픽=송정근 기자

제주시 애월읍 인구 변화. 그래픽=송정근 기자

본보는 광령리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포커스 그룹 인터뷰(Focus Group Interview·이하 FGI)를 실시해 악취의 원인과 민원이 줄지 않는 배경을 심층적으로 조사하기로 했다. FGI는 정량적인 객관식 설문조사와 달리 동일한 현안을 공유하고 있는 여러 명의 설문 대상자로부터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이끌어내는 정성적 설문조사 방법이다. 지난달 12일 여론조사업체 마크로밀 엠브레인의 도움을 받아 애월읍 광령리, 유수암리, 고성리에 거주하는 30~60대 남녀 주민 7명을 상대로 1시간 30분가량 FGI를 진행했다.

한국일보가 지난달 12일 제주 제주시 노형동에서 제주시 애월읍 양돈농장으로 인해 악취 피해를 겪고 있는 인근 주민 7명을 대상으로 표적집단면접을 진행하고 있다. 마크로밀 엠브레인 제공

한국일보가 지난달 12일 제주 제주시 노형동에서 제주시 애월읍 양돈농장으로 인해 악취 피해를 겪고 있는 인근 주민 7명을 대상으로 표적집단면접을 진행하고 있다. 마크로밀 엠브레인 제공


"보조금 가져갔는데 왜 개선 안 되나"

FGI 참가 주민들은 양돈업계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드러냈다. 특히 양돈업자-마을 원주민-공무원 사이에 유착이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제기했다. 광령리에서 10년 이상 거주하면서 수차례 악취 민원을 제기한 경험이 있는 유재형(42·가명)씨는 "마을 행사 때도 농장 대표가 내빈석에 앉아 있거나 찬조금을 내놓는 경우를 종종 본다"면서 "냄새가 심해서 민원을 제기해도 마을 관계자들이나 공무원들이 외려 나를 예민한 사람으로 취급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이유미(55·가명·여)씨는 "아무래도 제주도에는 '괸당(친인척을 이르는 말) 문화'가 있어서 악취 민원인들이 양돈업자들을 상대로 한 목소리를 내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제주시 애월읍 악취 실측 결과. 그래픽=송정근 기자

제주시 애월읍 악취 실측 결과. 그래픽=송정근 기자

본보가 입수한 제주악취관리센터의 제주시 애월읍 복합악취 검사 결과에 따르면, 2021~23년까지 22차례 검사에서 악취임이 확인된 '기준치 부적합' 판정은 3차례에 그쳤다. 그러나 FGI 참가 주민들은 "냄새가 나지 않는 시간대에 검사를 했을 것"이라고 여겼다. 악취관리지역 지정 이후 악취 문제가 개선됐느냐는 질문에는 "악취관리지역으로 지정된지 몰랐다"거나 "개선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유씨는 "외려 악취관리지역 지정 때문에 악취저감장치 현대화 등을 빌미로 농가에는 더 많은 보조금이 지원돼 반사이익을 누렸을 것"이라고 했다.

"억울하다, 고기 품질 떨어진다"는 양돈업계

지난달 12일 찾은 제주 광령양돈단지 내 양돈농장 모습. 제주=이현주 기자

지난달 12일 찾은 제주 광령양돈단지 내 양돈농장 모습. 제주=이현주 기자

반면 제주 양돈업계는 이 같은 주민들의 인식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2017년 숨골 사태 이후 악취 규제가 강화된 데다, 양돈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덧씌워졌다는 것이다. 원주민보다 냄새에 민감한 외지인들의 유입도 악취 민원을 늘리는 데 한몫했다는 게 업계 입장이다. 강명수 대한한돈협회 제주도협의회 사무국장은 "제주도 악취 민원은 숙박업소 사업주 등 특정 외지인이 반복적으로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양돈농장은 30년 넘게 유지돼 왔는데, 외지인들이 이 지역으로 들어오면서 민원이 다량 발생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악취관리지역은 악취 민원이 1년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요건으로 하고 있어, 민원이 아예 사라지지 않는 한 악취관리지역은 해제될 수 없다는 것도 업계에는 부담 요인이다.

악취 문제가 제주 양돈업의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광령양돈단지에서 양돈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유병선(35)씨는 "악취 저감이 아니라 아예 양돈농장을 없애려는 목적의 '악성 민원'도 많다고 본다"면서 "농장 운영할 힘의 90%를 악취 개선에 쓰고 나머지 10%만 돼지고기 품질 향상에 쓰니 고기 품질이 좋아질 수가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인터랙티브] 전국 악취 지도 '우리동네 악취, 괜찮을까?'

※ 한국일보는 2018년 1월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 전국 모든 기초지자체 및 세종시가 접수한 악취의심지역 민원 12만 6,689건과, 이 민원에 대응해 냄새의 정도를 공식적으로 실측한 데이터 3만 3,125건을 집계해 분석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내가 사는 곳의 쾌적함을 얼마나 책임지고 있는지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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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제주= 이현주 기자
오지혜 기자
윤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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