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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눈빛의 수리산 누렁이 '산이'... 주민들이 살렸다

입력
2023.09.2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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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떠돌이개 포획 → 안락사 현실
시민 20여명 자발적으로 떠돌이개 도와


경기 군포 시민들이 수리산 둘레길에서 밥을 챙기며 돌봐 온 떠돌이개 '산이'. 산이는 해외 입양을 준비 중이다. 동물과함께행복한세상 제공

경기 군포 시민들이 수리산 둘레길에서 밥을 챙기며 돌봐 온 떠돌이개 '산이'. 산이는 해외 입양을 준비 중이다. 동물과함께행복한세상 제공


“눈빛이 너무 선하더라고요. 제발 잡혀가지 않기만을 바랐어요.”

(군포시민 김보근씨)


공원이나 야산을 돌아다니는 떠돌이개는 어떤 이에게는 연민의 대상이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떠돌이개 중에는 사람을 잘 따르는 경우도 있지만 떠돌이개의 후손으로 아예 사람과의 관계 형성이 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사람을 따르지 않고 민가에 피해를 줬거나 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떠돌이개들을 '야생화된 유기견'이라 구분한다. 그리고 포획 후에는 통상 일정 기간(10일) 보호하고 이후 안락사하는 유기견과 같은 절차를 따른다. 떠돌이개는 대부분 믹스종이면서 중대형견으로 입양순위에서 밀려 보호소를 빠져나갈 가능성은 낮다. 이는 성견이든 강아지든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러한 떠돌이개를 외면하지 않은 시민들이 있다. 개의 선한 눈빛과 마주친 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음식을 나눠주며 개를 챙겼다. 시민들의 노력 덕분에 떠돌이개는 안락사 대신 해외에서 새로운 견생을 살 준비를 하게 됐다.

시민들 자발적으로 떠돌이개 돌보기 시작

경기 군포시 수리산 둘레길에서 사람들이 주는 음식을 먹으며 살아가던 개 '산이'. 동물과함께행복한세상 제공

경기 군포시 수리산 둘레길에서 사람들이 주는 음식을 먹으며 살아가던 개 '산이'. 동물과함께행복한세상 제공

경기 군포시 수리산 산책로 일대에 갈색 털의 떠돌이개가 나타나기 시작한 건 올해 4월 초. 개를 목격한 사람들은 저마다 지역 주민들이 모이는 온라인 카페에 글을 올렸다. 대부분은 개의 보호자를 찾거나 안전을 걱정하는 내용이었지만 불편함이나 두려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개를 직접 본 사람들 대부분의 반응은 "개의 눈빛이 선하다"였다. 수리산 둘레길을 자주 산책하는 김미영씨도 5월 초 개와 눈이 마주친 이후부터 개를 챙기기 시작했다. 김씨는 "배가 홀쭉한 채로 다가오길래 닭가슴살을 줬더니 남김없이 핥아먹었다"며 "비가 오는 날에는 비를 잘 피하는지 걱정이 돼서 매일 개를 만나러 갔다"고 설명했다.

다른 개들과도 잘 지내던 떠돌이개 시절 '산이'의 모습. 동물과함께행복한세상 제공

다른 개들과도 잘 지내던 떠돌이개 시절 '산이'의 모습. 동물과함께행복한세상 제공

김씨와 같이 개를 챙기는 사람들은 개의 이름을 '산이'라고 지었다. 산이를 챙긴 시민들이 20명은 넘었다. 이들 대부분은 산이의 사정을 안타깝게 여겼지만 이미 고양이나 반려견을 기르고 있는 상황이라 산이를 입양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매일 산이의 밥을 준비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입양처를 알아보는 일이었다.

김씨는 "반려견을 키우는 분 가운데는 진드기약, 심장사상충 약을 챙기고, 다른 분은 사료를 주고, 또 다른 분은 간식을 준비했다"며 "각자 할 수 있는 선에서 산이를 챙겼다"고 전했다. 이어 "사람도 무서워하지 않고 주책없이 다른 개들을 좋아해 쫓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더 안쓰러웠다"며 "적어도 개를 보호소로 보내 안락사시키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이 모아졌다"고 덧붙였다.

훈련소에 들어가 해외 입양을 준비 중인 '산이'. 동물과함께행복한세상 제공

훈련소에 들어가 해외 입양을 준비 중인 '산이'. 동물과함께행복한세상 제공

자신을 챙겨주는 사람들을 아는 듯 개는 둘레길에 자주 출몰했고, 그만큼 지자체에는 개를 포획해달라는 민원도 많았다. 지자체는 몇 번이나 포획틀을 놓고 포획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어떤 준비도 없이 지자체에 들어가면 안락사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아는 시민들이 포획틀에 들어온 산이를 풀어주기도 했다고 한다.

김보근씨도 산이의 '간택'을 받은 경우다. 6월 초 눈이 마주친 다음 자신을 따라오는 산이를 외면하지 못했고, 하루에 두 번씩 산이의 밥을 챙겼다. 슬퍼 보이는 눈빛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김씨는 "장마 기간에는 사료가 젖을 것을 염려해 옷 박스를 가져와 밥자리를 준비했다"며 "2개월 정도 챙겨주니 산이가 냄새를 맡기도 하고, 다가와 건드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포획, 해외에서 새 삶 준비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구조된 뒤 해외 입양을 기다리고 있는 '산이'. 동물과함께행복한세상 제공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구조된 뒤 해외 입양을 기다리고 있는 '산이'. 동물과함께행복한세상 제공

하지만 산이와 시민들의 불안정한 동행이 계속될 수는 없었고, 이들은 유기동물 보호단체인 동물과함께행복한세상에 도움을 요청했다. 산이의 갈 곳을 알아보던 중 7월 말 다른 시민들의 신고로 119에 포획돼 지자체 보호소로 들어가게 됐다. 포획하고 보니 이제 한 살이 된 수컷 강아지였다. 강희춘 동물과함께행복한세상 이사는 군포시의 협조로 산이를 보호소 밖으로 데리고 나왔고, 산이는 현재 해외 입양을 위한 훈련소에서 지내고 있다.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산이를 위한 후원계좌를 열고 십시일반 훈련소 비용을 보탰다.

김보근씨는 "이제 비도 맞지 않고 돌팔매 맞을 걱정도 없이 안전한 공간에서 살게 돼서 너무 기쁘다"며 "좋은 가정을 만나 사랑받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강 이사는 "보호자에게 버려지고, 잡히면 안락사될 운명의 개였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포기하지 않으면 살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며 "산이가 좋은 가족을 만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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