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개봉 '천박사'에서 악역 범천 소름 연기
"악역 연기할 때는 동료와 대화도 안 나눠
대본에 모든 것... 끝날 때까지 읽기 반복"
“진짜 좋아요? 정말 괜찮아요? 진짜로요?”
자리에 앉기도 전 그는 질문을 쏟아냈다. 27일 개봉하는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에 대한 평가를 궁금해했다. 영화에 대해 호평을 하자 “우리한테는 항상 좋은 얘기만 해주잖아요”라며 마음을 놓지 못했다. 재차 확인을 하고야 “그럼 다행이고요”라며 환히 웃었다.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허준호는 수더분한 말투와 표정으로 기자를 맞이했다.
‘천박사 퇴마 연구소’는 퇴마를 소재로 했다. 당주 집 장손이나 엉터리 퇴마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천박사(강동원)가 한 의뢰인 일을 돕다가 악귀 범천(허준호)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범천은 자신의 결박을 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천박사 일행과 다툰다. 범천은 살기 어린 허준호의 표정만으로도 영화의 한 축을 차지하기 충분하다. 한국 영화 악당 연기 1인자로 꼽히곤 하는 허준호다운 면모다.
허준호는 ‘천박사’ 대본을 “‘우와’ 하면서 읽었다”고 했다. “속도감 있는 전개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꼈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그는 출연을 주저했다고 한다. '체력' 때문이었다. 범천은 천박사를 상대로 꽤 많은 액션을 선보여야 하는데 허준호는 “소화해낼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제 몸은 제가 제일 잘 알잖아요. 몸이 느리면 방해만 될까 봐 고민했어요. 주변에서 ‘왜 안 해’라며 설득을 해 출연을 했고, 장면을 여러 개로 나눠 촬영을 해 체력 문제없이 해낼 수 있었어요.”
허준호는 자신의 연기 비결을 “대본 충실히 읽기”라고 했다. 그는 “대본에 (연기에 대한 모든 게) 다 써 있다”며 “3, 4번 읽으면 연기에 대한 그림이 눈앞에 펼쳐진다”고 말했다. 그는 “쉼표, 말 줄임표까지 표현해내기 위해 촬영 끝날 때까지 반복해 읽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절대로 제 생각으로 연기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스크린을 장악하는 허준호의 무시무시한 기운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질까. 그는 의외로 “어떤 작품이든 제일 쉽게 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허준호는 “(자신의 안위와 관련된) 설경을 어떻게든 뺏어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해, 천박사를 죽여야지”(시종 웃던 그가 이 대목을 말할 때는 범천이 된 듯 살벌했다)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생각하며 촬영에 들어간다고 했다. 그는 “악역 할 때는 배우들과 말을 나누지 않고, 홀로 떨어져 있는다”고 덧붙였다. “친하게 웃고 떠든 직후 (악한) 연기를 해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촬영장에서 외롭지 않냐고 묻자 “괜찮아요,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까”라고 답했다.
허준호는 “조금은 다가가기 힘든 얼굴”을 지녔다. 그는 “불편해하시는 분들이 있으니 일부러 제가 먼저 다가간다”고 했다. 악역이 아니면 촬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군림하지 않는 선배, 귀찮지 않은 사람, 그림자 같지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1986년 영화 ‘청 블루 스케치’로 데뷔한 이래 배우로 37년을 살았으나 여전히 힘든 감정 표현이 있다. 슬픔이다. 그는 “남자는 눈물을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살았고, 나이가 드니 눈물이 더 메말랐다”며 “슬픔을 드러낼 때 눈물 내기가 제일 힘들다”고 했다.
허준호는 인터뷰 중 '성령'이라는 말을 곧잘 입에 올렸다. 그는 2010년부터 6년 동안 연기를 쉴 때 기독교 신자가 돼 미국에서 선교 활동을 했다. 그는 “상대 배우가 누구든 다 오케이”이고 “어떤 배역이든 주시는 것만으로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한 번의 공백기가 있어 지금의 삶이 좋다”며 “옛날 일은 거짓말처럼 다 잊어버렸다”고도 했다. 그는 “하나님 성령을 받아서…”라고 말했다. “이제는 촬영장에서 한발 물러나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어요. 저는 너무 평안하고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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